이달의 詩評

오세영(시인평론가서울대학 교수)

 

차옥혜의 목련바다(현대문학9월호)를 재미있게 읽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시상, 절제된 언어, 투명하고 밝은 이미지 그리고 주관 표출의 억제 등이 돋보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이미지즘 계열에 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시인은 아마도 <수많은 작품보다 일생일대의 훌륭한 단 하나의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하여>(파운드) 고심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목련을 예로 들어보자. 

 

하얀 새들이 깃을 친다.

 

평생 형틀에 매여

살은 삭고 뼈만 남은

한 남자가 승천한다.

 

세계의 싸움터에

총소리가 멎는다.

 

드디어 하늘을 껴안은

하얀 나비떼

지상으로 돌아온다.

 

시인에게 있어서 제목의 선정이란 여러 가지 문학적 장치의 고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 시에서는 시적 인식의 대상, 즉 소재를 제시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시의 전체내용이 <목련꽃>에 대해서 씌어지고 있음을 암시해준다는 말이다. 목련꽃에 대한 순간적 지각의 의미가 이 시의 전체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총 4연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각개 연 하나하나가 목련꽃을 서술한다. 시적 진술에 여러 가지 부차적 장식들이 있지만, 이를 추상화시키면 대략 다음과 같다. (1)목련꽃 = 깃을 치는 하얀 새, (2)목련꽃 = 형벌로 뼈만 남은 한 남자의 승천, (3)목련꽃 = 세계의 싸움터에서 멎는 총소리, (4) 목련꽃 = 지상으로 돌아오는 하얀 나비떼 등이다. 이상의 요약은 이 시가 시인의 어떤 관념이나 주장을 독자에게 호소하려는 의도에서 씌어진 것이 아니라, 사물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때 얻어진 순수한 현상학적 의미를 형상화함으로써 씌어진 것임을 알게 한다. 요컨대, 어떤 관습적인 의미나 경험적 인상, 또는 편견을 배제하고 시인이 사물로서의 목련을 소위 순수의식으로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순간적으로 새도 되고 남자도 되고, 또한 총소리나 나비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이미지 제시에 의해서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복합적인 의미가 함축된 이미지를 일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위험이 따르겠지만, 대상과의 유사성을 전제하고 살펴본다면 대체로 구원과 평화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하얀 목련꽃들은 소복 입은 여인 같은 느낌을 주는 데, 동시에 꽃망울이 떨어진 연후에 잎이 돋아나는 생리는 이와 관련하여 자기희생, 속죄양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목련꽃이 지닌 이와 같은 자기 헌신, 죽음 순수동경, 구원 등의 의미를 시인은 <하얀 새> <승천하는 남자> <싸움터에서 멎는 총소리> <하얀 나비떼> 등으로 형상화시킨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차옥혜의 목련은 시인이 이미지 창조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독자에게 호소해야 될 어떤 인생론적 관점을 결여하고 있다. 아름다운 시와 훌륭한 시는 다른 것이다. 앞으로 차옥혜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아름다운 이미지를 통해 어떤 삶의 진실을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대문학 198510월호 420-421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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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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