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그림자

시 -5 2026. 8. 8. 09:23

나무와 그림자

                                         차옥혜

나무는
해바라기이면서도
평생 해를 등지고 있는
제 그림자가 아프다

나무는
제 발 밑에서만 서성이며
끝내 말 한 마디 못 하는
제 그림자가 안타깝다

나무는
한 번도 일어서지 못 하고
꽃 한 번 못 피우고
땅에 납작 엎디어 사는
제 그림자가 안쓰럽다

나무는
어둠뿐인 제 그림자가
종내는 제 모습 같아 서럽다

                                          (시와산문, 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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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집에 소 떼 돌아오다

                                                                         차옥혜

집 뒷산에 불이 났으니
빨리 마을회관으로 피하라는
이장의 전화 자다가 받고
허둥지둥 집 나서던 노부부가
외양간 문 열어주며 소들에게

“어서 나가 여기 있으면 죽어.”

외치니 소들이 우르르 어둠 속으로 사라지다

아침에 집에 돌아온 노부부는
주택, 살림살이, 농기구, 외양간 몽땅 숯덩이가 된 집터에
어미 소 열네 마리와 송아지 여섯 마리
불에 그을린 소도 있지만
한 마리도 빠짐없이 스무 마리 소가
고스란히 돌아와 있는 모습 보며 눈물 펑펑 쏟다

공포에 집 나간 소들은
처음 보는 불난 세상 어떻게 피해 모두 살아왔을까?
뛰며 각자도생하지 않고 어떻게 함께 불길을 헤치며
노부부와 외양간 그리며 돌아왔을까?

자기들만의 말과 몸짓으로
그들만의 믿음 신뢰 지혜 사랑으로
서로서로 격려하고 부축하며 응원하며
불타는 산길을 헤쳐 돌아온 소들!
우러르고 우러른다

                                                (한국시학,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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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집은 어디에

시 -5 2026. 5. 14. 09:47

해의 집은 어디에

                                                       차옥혜

산골에 사는 언니는
산이라 하고
바닷가에 사는 오빠는
바다라 한다
만경평야에 사는 이모는
지평선이라 한다

탄광 막장에서 일하는 동생은
잠긴 방 안에 두고 온
엄마 없는 어린 두 딸이
시도 때도 없이 아빠를 부르는
자신의 가슴속이라 한다

인력시장 떠돌다
반신불수 된 조카는
가도 가도 세상은 어둠뿐
해의 집은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생명과문학 202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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