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으로 만나요 꽃으로 만나요

                                                             차옥혜

대지가 비명을 지릅니다
하늘이 통곡합니다
탱크가 지나간 자리
미사일이 날아와 터진 곳
불타고 부서진 건물 틈에
끼이고 묻히고 떨어진 사람시체들
21세기 문명 문화 지성 시대에
무슨 전쟁이라니요
안되요 안되요 절대 안되요
멈춰요 멈춰요 즉각 멈춰요
사람들 무더기로 죽어요
지구 부서져요
당장 무기 내려놓고
풀잎으로 만나요 꽃으로 만나요
분쟁의 대지 봄비로 적셔
새싹 틔워 꽃을 피워 생명 키워
대지 하늘 바다에 평화 합창 울려요
지구 모든 사람 모든 나라
언제나 어디서나 서로서로
풀잎으로 만나요 꽃으로 만나요

 

                                             <경희문학, 2022.10.10>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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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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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시 -5 2025. 8. 30. 09:49

  매미

                                                 차옥혜

가을이 되고서야 하늘을 본다
날마다 팔 다리에서 온몸으로
마비증세가 퍼져간다.
아무리 노래를 해도 울림이 없다.
여름날 몸을 떨던 나뭇잎이
어디론가 사라져간다.
어찌하여 들풀들은 무릎 끓기 시작할까
왜 나무는 끝내 입을 다물고 있을까
여름내 노래 불러준 모든 것이
왜 나를 거부하고 있을까
이 삭막한 대지를 적시는 비는 무엇인가
이제야 끝없는 물음에
하늘만 자꾸 넓어져 간다.

                                                  <시집 『깊고 먼 그 이름』 1986>

 

출처: https://barampoet.net/46 [차옥혜 시인의 블로그: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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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가 불타고 있는 것은

                                                   차옥혜

노령산맥 줄기 병풍 같은 산 중턱
하늘재가 소리 없이 안으로 불타고 있는 것은
가을 탓이 아니었다.
지금은 지도에 없는 거의 사라진 마을이지만
인심 좋아 물이 좋아
120여 가구 모여 살던 마을이다.
하루아침에 생각 하나로
이웃끼리 형제끼리 적이 되던 미친 시절
사람이 반가워서
사람이 가여워서
밥 주고 재워준 게 죄가 되어
집은 불타고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과녁이 되었다.
그래도 20여 가구는 남았는데
과부들은 두세 번씩 시집가고
한 사람 두 사람 바람 따라 길 따라 흩어져
지금은 네 집만 남았다.
그중 두 집은 빈집이고
두 집은 산닭을 길러
내장사나 담양호로 가는 관광객이나
운치 좋은 곳에서 식사하려는 도시인에게
도리탕이나 백숙을 팔고 있다.
그나마 그들도 아이들 때문에
도시로 나갈 꿈을 꾸고 있다.
몇십 년 꼭꼭 숨겼던 이야기
어쩌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조금 들려주는데
통일이 되면 이 나라 능선마다 계곡마다
어떤 십자가들 튀어나올까.
하늘재가 소리 없이 안으로 불타고 있는 것은
가을 탓이 아니었다.

                                   <기독교사상,199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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