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살구나무

시 -3 2015. 7. 30. 15:00

 

억울한 살구나무

                                               차옥혜

 

 

살고 싶다 잘 살고 싶었다

가지마다 빈틈없이 화사한 꽃을 매달고

천지사방 벌들을 불러 모으고 싶었다

푸른 하늘에 무성한 잎을 드리워

새들의 노래자랑 무대가 되고

내 그늘에 모여 쉬는 사람들에게

잘 익은 열매를 떨어뜨려주고 싶었다

주인이 나를 자랑하며 기쁘기를 바랐다

 

나는 묘목으로 팔려온 새 뜰에서

꿈을 펼치려고 온 힘을 다하여 몸부림쳤다

그러나 늙은 감나무뿌리는 내 어린뿌리를

가로지르며 한사코 텃세를 부리고

잔디뿌리는 내 발을 칭칭 감고 옥죄었다

나무와 풀들이 몰려와 내 물을 빼앗아 마셨다

허덕이며 듬성듬성 꽃을 피우고 새싹을 내밀면

애벌레들이 잽싸게 갉아먹어버렸다

간신히 몇 개 열린 살구는 바람이 날려버렸다

 

주인은 나를

오래 기다렸으나 가망이 없다고

톱을 들고 다가선다

 

<문학과행동  2015년 여름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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