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살구나무
차옥혜
살고 싶다 잘 살고 싶었다
가지마다 빈틈없이 화사한 꽃을 매달고
천지사방 벌들을 불러 모으고 싶었다
푸른 하늘에 무성한 잎을 드리워
새들의 노래자랑 무대가 되고
내 그늘에 모여 쉬는 사람들에게
잘 익은 열매를 떨어뜨려주고 싶었다
주인이 나를 자랑하며 기쁘기를 바랐다
나는 묘목으로 팔려온 새 뜰에서
꿈을 펼치려고 온 힘을 다하여 몸부림쳤다
그러나 늙은 감나무뿌리는 내 어린뿌리를
가로지르며 한사코 텃세를 부리고
잔디뿌리는 내 발을 칭칭 감고 옥죄었다
나무와 풀들이 몰려와 내 물을 빼앗아 마셨다
허덕이며 듬성듬성 꽃을 피우고 새싹을 내밀면
애벌레들이 잽싸게 갉아먹어버렸다
간신히 몇 개 열린 살구는 바람이 날려버렸다
주인은 나를
오래 기다렸으나 가망이 없다고
톱을 들고 다가선다
<문학과행동 2015년 여름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