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이 길을 가는
차옥혜
여기는 수렵 지
허가받은 사냥꾼들이 총을 쏜다.
까투리와 새끼들 앞에서
멋지게 춤추던 장끼가
뚝 떨어진다.
엄마 아빠 앞에서
자랑스럽게 바위산 치달리던 새끼노루가
퍽 쓰러진다.
세계여
총소리로 아침이 열리는 광야에서
제 하늘, 제 땅, 제 집에서 쫓겨
길 없이 길을 가는
발소리를 듣느냐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벼랑에서
총구를 마주 보는
눈동자를 보느냐
여기는 수렵 지
허가받은 사냥꾼들이 총을 쏜다.
<샘이 깊은 물, 1993년 5월호>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1993.11.5.>
<꿈 어떤 맑은 날, 2005.5.8.>
<5월 문학총서 1, 201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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