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옥혜 시인의 희망봉

                                                                                     오시영(시인, 변호사)

⸱⸱⸱⸱⸱⸱생략⸱⸱⸱⸱⸱⸱

  며칠 전 차옥혜 시인으로부터 식물글자로 시를 쓴다라는 시집이 우송되어왔다. 차옥혜 시인은 도시 생활을 이십여 년 전에 접고 시골로 귀농하여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시인의 삶을 관조하고 있는 분이다.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는 시인의 식물정신이 시집의 여러 시편에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본다. 식물의 생명 정신을 사람들이 배우기를 갈망하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순박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채산성과 경제성을 무시한 식물가꾸기정신, 몸이 고달픈데도 땡볕과 가뭄을 이기고 살아나 주는 식물들이 고마워 어쩔줄 몰라 하는 계산무시의 농법에 매진하는 시인의 참삶의 모습이 전해져 와 잠시 행복해진다.

  그의 시 희망봉을 본다. 달리고 달려온 대륙을 바다가 가로막는 곳/ 파도쳐 파도쳐온 바다를 절벽이 가로막는 곳/ 거기에 희망봉이 있다./ 바다는 절벽을 기어올라야 희망봉에 오를 수 있고/ 땅은 바다에 빠져야 희망봉을 만날 수 있다./ 두려움과 절망과 죽음을 무릅써야만/ 만날 수 있는 희망봉/ 적과 적이 덜컥 껴안아야만/ 만날 수 있는 희망봉/ 살아있는 한/ 포기할 수 없는 곳/ 저절로 꿈꾸며 달려가는 곳/ 그러나 오늘도/ 바다는 끝없이 밀려와 절벽을 기어오르다 미끄러지고/ 땅은 끝없이 달려와 바다 앞에서 한숨 쉰다./ 있으나 없는 희망봉/ 쓸쓸하고 영원한 오로라여(차옥혜의 희망봉전문, 시집 식물 글자로 시를 쓰다에 수록, 시문학사 간).

  바다는 절벽을 기어올라야 희망봉을 만날 수 있고, 땅은 바다에 빠져야 희망봉을 만날 수 있다는 시인의 말이 가슴 절절히 스며들어온다. 희망봉은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남아프리카 최남단 가까이에 있는 해안 절벽이다. 희망봉은, 해양기술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해양 무역에 나섰던 수많은 유럽의 선박들이 이 근처에 와서야 비로소 고향이 가까워졌음을 실감하고 살아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고 하여 희망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알려져 있다.

  희망이라는 오로라는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지만, 절망에서 인간을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도전을 향한 용기를 준다. 희망봉이 있는 곳,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인종 차별정책으로 악명이 높았던 나라이고, 악랄한 고문과 폭압으로 수 많은 흑인들이 생명을 빼앗겼던 곳이고, 그러면서도 만델라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용서와 화해의 땅이기도 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인이 백인을 용서한 최초의 땅인지도 모른다. 흑인을 억압했던 백인들이 흑인에 의해 용서받고서도 아직 스스로의 잘못을 완전히 통회하지 못한 땅이기도 하지만(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뼈 속 깊이 반성하고 180도 변화되지는 않는다) 희망봉이라는 이름만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오는 6월 월드컵이 열린다. 그 준비과정에 부족함이 있어 개최를 취소하여야 한다는 외신이 간간히 전해져오기도 하지만 그것도 다 흑인에 의해 용서된 땅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질시하는 자들의 목 따는 소리일 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우리가 2002년 월드컵을 잘 치렀던 것처럼 잘 치러낼 것이다.

⸱⸱⸱⸱⸱⸱생략⸱⸱⸱⸱⸱⸱

  우리의 희망봉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G20정상회담에 있는 것일까? 4대강살리기공사와 세종시수정안에 있는 것일까? 한상률 전국세청장의 로비사건수사이나 이명박대통령의 사돈기업인()효성 관련사건 등 권력형비리수사를 유야무야하고 있는 검찰에 있는 것일까? 무상급식정책이나 교원인사권을 전담하는 교육감권한을 축소하려는 정치권에 있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차옥혜 시인의희망봉을 음미하며, 그래도 나는 실업상태의 젊은이들에게서, 칡넝쿨같은 식물정신에서 희망을 본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청년들이여,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개척하라 바다로 나가라, 그래야 희망봉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2010312, 법률저널, 오시영의 세상의 창>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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