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집 앞에서
차옥혜
상트 페테스부르크 뒷골목 지하 도스토예프스키집에서
놀음을 즐겼다는
빚쟁이가 찾아오면 뒷문으로 도망갔다는
빚을 갚기 위하여 소설을 썼다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못 만나고
그의 흔적만 더듬다가
지하 계단을 오르니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코리니코프가
외국 관광객들에게
러시아 특산품 나무인형과 면숄을 팔고 있다.
이제는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
먼 나라까지 몸 팔러간 애인 소냐를 찾지 않는다.
나는 그 집 앞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서 있다.
그러나 빚쟁이를 피하여
어디서 ‘죄와 벌’을 다시 쓰고 있는지
도스토예프스키는 돌아오지 않는다.
팔다 만 물건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라스코리니코프의 그림자가
잠시 골목길에서 흔들리다 사라진다.
<시집 『허공에서 싹 트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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