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시인

                                                      차옥혜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가 시인인 것을 알았네.

문자로 남긴 시는 한 줄도 없지만

벌판에 산에 강에 바다에

길에 집에 마을에 도시에

내 마음 멎는 곳마다

어머니가 몸으로 쓴 시 박혀있네.

나만 볼 수 있는 시

내가 번역해야만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의 시를 읽네.

 

향기롭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시

눈물 나고 가슴 아픈 어머니의 시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어머니의 시

읽어도 읽어도 더 읽고 싶은 시

읽다 보면 가슴에 고이는 사랑

읽다 보면 눈에 맺히는 눈물

읽다 보면 온 몸에 퍼지는 평화

 

나는 글씨로 시를 쓰느라

사랑을 잃고 삶을 허물었는데

어머니는 몸으로 시를 쓰며

사랑을 이루고 삶을 세우셨네.

 

시인인 나를 부끄럽게 하는 어머니의 시

내 생애 가장 감동스런 어머니의 시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어머니의 시

천지 사방에 박혀 있는 어머니의 시

 

우리 어머니는

세상에 몸으로 시를 쓴 시인이네

 

<시문학  200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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