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차옥혜
입추와 처서와 백로를 지나
한로와 상강과 입동을 향해
그녀가 가고 있다.
벼와 사과와 감의 눈을 드려다 보며
갈대와 쑥부쟁이와 들국화의 가슴을 열어보며
귀뚜라미와 참새와 고라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늘과 땅과 강물의 숨소리를 들으며
이 세상 모두가 여기까지 오기 위하여
괴롭고 괴롭고 아프고 아팠음을 알고
쓰라리고 화나던 미움도 죽음 같던 시간도
생애였음을 받아들인다.
문득 철없이 보내버린
입춘과 청명과 단오로 돌아가
참으로 아름다운 꽃만을 피우고 싶어져
진실로 어여쁜 잎새만을 키우고 싶어져
높은 산 높은 나무 우듬지에서 발을 돋아
오던 길 되돌아보며
나뭇잎에 피를 쏟는다.
끝내는 소설을 지나 동지섣달 그믐밤
얼음 산 잠의 집에 갇히겠지만
오늘의 자신이
떠난 생명의 썩은 힘으로 태어났듯이
올 목숨의 거름인 것 믿으며
단풍든 몸으로
단풍든 것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지금 살아 떠도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이다
속삭인다.
<시와생명 2001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