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힘으로 빛나는 자작나무
차옥혜
러시아 상트 페테스부르그 옛 성에서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레닌이, 혁명군들이
머물다 갔을지도 모르는
눈부신 자작나무를 만났다.
몇 백 살일까. 몇 천 살일까.
두 아름드리 몸통과 쭉쭉 뻗은 하얀 가지들이
빛을 뿜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이 세상 삶들이
상처의 힘 없이도 빛날 수 있을까.
상처의 힘 없이도 목숨을 지킬 수 있을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 상처는 언제쯤
아물어 빛을 발할까.
자작나무를 껴안자
자작나무가 내 몸으로 들어왔다.
슬픔으로 꽉 닫혔던 내 마음의 창들이 열리고
내 마음의 자작나무가 세계를 향해
새를 날렸다.
<시와시학 200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