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힘으로 빛나는 자작나무

                                                            차옥혜

 

 

러시아 상트 페테스부르그 옛 성에서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레닌이, 혁명군들이

머물다 갔을지도 모르는

눈부신 자작나무를 만났다.

몇 백 살일까. 몇 천 살일까.

두 아름드리 몸통과 쭉쭉 뻗은 하얀 가지들이

빛을 뿜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이 세상 삶들이

상처의 힘 없이도 빛날 수 있을까.

상처의 힘 없이도 목숨을 지킬 수 있을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 상처는 언제쯤

아물어 빛을 발할까.

 

자작나무를 껴안자

자작나무가 내 몸으로 들어왔다.

슬픔으로 꽉 닫혔던 내 마음의 창들이 열리고

내 마음의 자작나무가 세계를 향해

새를 날렸다.

 

<시와시학  2001년 가을호>

'시 -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바람  (0) 2006.05.16
존재는 슬프다  (0) 2006.05.05
죄인의 손  (0) 2006.05.05
섬은 뭍으로 가고 싶다  (0) 2006.05.05
마음을 버리랴  (2) 2006.05.05
Posted by 차옥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