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세상이 환하다
차옥혜
친구 영숙이는 나이 50이 넘어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좋은 수입을 올리던 외과의사 남편과 함께
사택으로 10여 평 아파트와
두 사람 합쳐 월급 100$을 받기로 하고
카자흐스탄 알마타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의료봉사길을 떠났다.
알마타이 대 평원엔 긴 겨울 내내 눈이 덮이고
시내엔 오전 내내 자욱한 안개 속에서
나무마다 얼음꽃이 피고
집 없는 사람들이
동상 걸린 발을 질질 끌며 서성거린다고
치료받으러 온 동상 환자의 양말이
발바닥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어 살과 함께 도려냈다고
환자들 몸에서 이가 뚝뚝 떨어지고
어떤 환자의 몸은 일부가 썩어 구더기가 우글거리고
상처 냄새가 분뇨 냄새보다 심했다고
어떤 환자들은 약을 주면 팔아 빵을 산다고
의료봉사 틈틈이 야채를 길러 팔아
병원 재정에 보태야 한다고
편지지가 없어 인쇄용지 뒤에 써 보낸
영숙이의 편지
캄캄한 먼 나라 등대지기 영숙이 부부
<시와시학 2001년 가을호>
'시 -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의 자궁이 지은 집 (0) | 2008.12.26 |
---|---|
딱따구리가 날아왔다 (0) | 2008.09.09 |
허공에서 싹 트다 (0) | 2008.04.01 |
소금구이 새우 (0) | 2008.01.25 |
가을엔 소리가 투명하다 (1) | 2007.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