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같은 시는 내 삶의 형식이며 영혼의 집

  차옥혜      

11월 중순 끝자락. 미처 떠나지 못한 가을의 꼬리를 밟고 성급한 겨울을 타고 온 첫눈이, 거리의 옷 벗은 나무들의 맨몸을, 아직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낙엽을, 밤늦게 귀가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내 창밖에서 하얀 너울을 흔들며 춤을 춘다.

아! 저 첫눈! 금시 나를 환하게 하고 나를 설레게 하는 저 첫눈은, 사실 따지고 보면 대기의 온도 차로 하늘에 떠 있던 물방울들이 눈이 되어 내려오는 것인데, 녹으면 단지 시커먼 산성물에 불과한데, 혹독한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선함과 새로움과 희망을 느끼게 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다. 첫눈은 분명 차가운 것인데도 마치 내 애인처럼 나를 손가락 하나 안 대고도 나를 뜨겁게 달군다.

문학은! 시는! 나에겐 바로 이 첫눈 같은 존재다.

초기 시집에 실렸던 시에 관한 시를 읽어본다.

 

너를 향해 불을 지핀다./ 불빛 보고 내게 오라/ 기다리다 지쳐 잠들면/ 너는 나를 부른다./ 반가워 깨어나면/ 너는 이미 떠나고 체취만 남았다./ 더 밝은 불을 지피랴/ 내 몸 구석구석 남김없이 태우랴/ 타 버린 재를 들치고/ 내 영혼 안을 구르는/ 舍利로 와/ 만남의 기쁨이 비로소/ 노래로 터지려는가
                                                                                  - 졸시 “시 1“ 전문

오늘은 네가 가까이 있는 듯하여/ 기쁘다./ 먼 산의 메아리도 웃고/ 열 두 갈래 마음/ 한 쪽으로 나부낀다./ 내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이 빛나고/ 나는 자꾸/ 사물 속에 스며든다.
                                                             - 졸시 “시 2” 전문

네 발자국 사라졌다./ 자살한 시인/ 북망산에 묻고/ 아직도 무엇에 연연함인가/ 종일 목 놓아 울고도/ 다 울지 못하였다.
                                              -
 졸시 “시 3” 전문

내 가슴이 비좁아/ 숨 막혀 못 살겠다고/ 네가 홀연히 떠나/ 종적을 감추자/ 나는 황무지가 되었다./ 우러르는 하늘마저/ 나를 외면하고/ 종일 모래바람만 분다. 
                                                  - 졸시 “시” 전문

 

시를 주제로 쓴 이 몇 편의 시가 보여주는 것처럼 나는 시에 살고 시에 죽던 때도 있었다. 그런 절박하고도 간절한 시기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때는 꿈속에서도 시를 쓰고 한밤중 자다가 일어나서도 시를 썼다. 그러다가 나를 사로잡던 시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고 침체기에 접어들면 시가 죽었느니 예술혼이 꺼져버렸느니 푸념하며 나는 실망하고 기가 죽는다.  

문학은, 시는, 나를 키운 제 2의 부모다. 나는 문학을 통해 삶과 세계와 우주를 알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문학 서적을 읽는 것이 즐거웠고 본능처럼 생활에서 느끼는 감동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에게 기도이며, 죽음과 고통을 극복하는 힘이고, 카타르시스이며, 희망의 미래로 통하는 문이다. 시는 내 삶의 형식이며 내 영혼의 집이며 나와 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또한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시를 쓰면서, 세계와 소통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나를 투영하고, 존재하는 것들을 자연을 내 가슴에 품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나를 끝없이 확대하기도 하고, 나를 객관화하여 나를 바라보며, 나를 재창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성장하고 거듭난다. 시는 내 사랑의 표현 방법이기도 하다.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

 

우렁우렁 산을 무너뜨리고 있는/ 굴삭기와 싸우며/매미가 운다// 매미는 울어/ 곤두박질치는 나무에게/ 겁에 질린 풀잎에게/무너지는 흙더미에게/다가간다 함께 한다//매미는 울어/ 굴삭기에 맞서/ 굴삭기 소리에 떠서/ 굴삭기 소리를 치받는다// 매미가 운다/ 뙤약볕을 흔들며/ 굴삭기 소리를 깨뜨리며/ 굴삭기 소리에 혼절한 새들을 깨우며/ 매미가 운다// 우는 매미여 시인이여
                                           - 졸시 “매미가 운다” 전문

 

이 시의 ”우는 매미“처럼 최소한의 생존조건을 빼앗기고 폭력에 시달리는 뭇 생명을, 동시대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가 시인이 아닐까! , 시인은 자유와 평화와 정의와 평등을 사랑하는 근원적 속성을 지닌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의 벽돌로/ 세계를 쌓는다.//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 보이는,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들의/ 지나간, 올 존재들의/ 모습을 본다./ 소리를 듣는다.// 거기 굶어죽는 아이들의 감긴 눈꺼풀 속의 눈/ 천리 밖 폭탄 터져 부서진 뼈들의 노여움/ 썩은 강물에서 헐떡거리는 물고기들/ 사라진 갯벌을 찾아 종종거리는 조개와 게들/ 먹이를 찾아 헤매는 개미의 땀방울/ 밀려오는 사막 앞에 떠는 패랭이꽃/ 바위의 가슴에 흐르는 냇물 소리/ 벚꽃들의 울음소리/ 나비들의 찢긴 날개소리/ 빙하가 녹아 갈라지는 소리/ 섬 하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소리/ 돌아가신 부모님이 수시로 걸어오는 전화소리/ …………//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버무리어/ 생명우주를 빚는다./ 현실과 꿈을 버무리어/ 풀들에 나무들에 시가 주렁주렁 열리는/ 냇물에 바다에 시가 떼지어 헤엄치는/ 평화로운 생명마을을 세운다./ 사랑과 열정의 넋으로/ 아늑하고 자유로운 생명집을 짓는다.      
                                                               - 졸시 “시인” 전문

 

위의 시 “시인”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시인은 “생각의 벽돌로 세계를 쌓는” 사람이며 “사랑과 열정의 넋으로 아늑하고 자유로운 생명집을 짓는” 사람일 것이다.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시가 꽃을 껴안는다./ 꽃이 진다./ 그러나 시가 껴안은 꽃은/ 영원히 지지 않는다./ 시에 안긴 꽃은/ 내일에도 현실이다.  
                                      - 졸시 “ 시와 꽃 ” 전문

 

그렇다. 시는 “내일에도 현실”이다. 시는 영원하다.

시로 삶을 담아내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세상 어떤 삶도 시의 프리즘을 통하면 꽃이 되고 영원이 된다. 시는 낡고 비천하고 하잘것없어 보이는 것에서도 새롭고 귀하고 빛나는 생명을 찾아 보여주는 신비로움이 있다. 그래서 시의 향기를 맡은 사람들은 시를 떠나지 못하는가 보다.

 

비경제적이고 부질없어 보일지라도/ 그래도 나는 시인이고 싶다./ 풀잎과 풀벌레의 노래/ 구름과 별과 바위들의 눈빛/ 받아 적고/ 세상이 버린 것에서/ 아름답고 귀한 것 찾아내고/ 작고 가녀린 것들의 눈물에 젖어들고/ 존재하는 것들의 평화에 입 맞추고/ 외롭고 쓸쓸해도/ 인간의 자존심 깃발처럼 펄럭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사는/ 나는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고 싶다.
                                                                              - 졸시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고 싶다” 일부

 

나는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고 싶다. 내가 시인인 것이 기쁘다.

 

이번 시집은 내 여덟 번째 시집으로서 유난히 나와 세계를 바라보며 울던 시기에 쓴 작품들로 엮었다.

일곱 번째 시집보다 대부분 먼저 쓴 작품들인데 더 늦게 태어났다.

이 세상은, 꽃(이상, 꿈, 희망)을 본 소수 성공한 사람의 기쁨만이 아니라, 어려움을 견디며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사람의 수고와 실패한 사람의 절망까지도 합하여 만들어진 거름에서 생명을 얻고 유지되는 것이리라. 허공에서 싹 튼 마늘처럼.

이 시집이 읽는 사람의 마음밭에 잠시라도 첫눈으로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시집 허공에 싹 트다』 2008>                 

『나에게 문학은 무엇인가』(문학의집ㆍ서울) 2007년에 수록된 것을 일부 수정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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