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감과 까치의 결혼식

                                                              차옥혜

 

하늘이 높고 맑고 푸르른 날

홍시감과 까치가 결혼식을 올린다

해가 주례를 선다

들깨, 서리태, 벼, 늙은 호박, 배추, 무, 파, 갓……

국화, 만수국, 채송화, 벌개미취, 맨드라미, 참취……

소나무, 좀작살나무, 화살나무, 모과나무, 주목, 밤나무……

새, 멧돼지, 토끼, 고양이, 쥐, 개, 고라니, 다람쥐……

도라지 캐던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네

장가 못간 아들 시집갔다 못 살고 온 딸

들판을 꽉 채운 축하객들이 가슴 설레며

늙은 감나무 우듬지 신부 홍시감과 신랑 까치를 본다

신랑 까치가 터질듯 부푼 신부 홍시감 깊숙이

부리를 박고 입 맞추며 몸을 떤다

신부 홍시감의 바람 면사포가 출렁인다

새들이 축하합창을 한다

홍시감의 온 몸이 더욱 붉어진다

저런! 막 결혼식을 올린 신랑 까치가

벌써 다른 홍시감과 또 새장가를 든다

해는 망설임 없이 또 주례를 선다

들판 하객들이 소란해진다

 

<문학과 창작  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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