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이 되라 하네
차옥혜
또다시 어둠이 몰려와
장님이 되라 하네
해를 보기 위하여
꽃들은 얼마나 피고 지었어라
풀들은 얼마나 나부끼며 울었어라
나무들은 얼마나 새순을 내려고 몸부림쳤어라
새들은 얼마나 날개를 파닥였어라
어둠을 밀치며 해가 솟았을 때
산맥은 얼마나 기뻐 치달렸어라
강물은 얼마나 즐겁게 노래했어라
만물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났어라
하늘길, 땅길, 바다길, 꿈길 환하여
목숨들은 서로 껴안으며 반짝였어라
또다시 어둠이 천지를 삼켜
어둠의 칼들이
꽃 치는 소리
풀 베는 소리
나무 자르는 소리
날개 꺾는 소리
눈이 있어도 눈이 없어
죽음에 부딪히고 빠지며 떠는 목숨들
얼마나 울고 울어야
얼마나 무너지고 무너져야
얼마나 부르고 불러야
눈을 다시 찾으랴
사랑을 다시 보랴
둘러보고 둘러보아도
숨 막히는 어둠뿐
어둠은 잠자코
장님이 되라 하네
<시와 문화 201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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