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나희덕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감상】 시인은 해변에서 힌 거품을 내며 밀려오는 파도를 수만 말이 뛰어오는 모습으로 보고 있다.동시에 그 말들은 세계로부터 시인에게로 쏟아져오는 언어이기도 하다. 자신의 몸 속에서도 말 한 마리 튀어나와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말은 짐승 말이면서 동시에 시인의 가슴 속에 깃든 영혼의 부르짖음! 시인의 말인 것이다. 두 가지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시인의 내면과 풍경이 하나로 통합되어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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