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내시며 길을 가시는 아버지

                                                              차옥혜

 

 

자주 홍수가 나던 황야

길 없는 벌판에 길을 내시며

헤매는 이들의 손목을 잡고

길을 가시는 아버지

 

삶의 굽이굽이 가시밭 길목마다

아버지의 상처에서 피어난 꽃들이

내 넋을 깨우고

나를 향기롭게 하고

내 마음을 열어

뒤 뜰 풀 한 포기의 한숨소리를

바위 틈 다람쥐의 흐느낌을

듣게 하며

발아래 있는 하늘도 보게 하여

내가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게 합니다.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

마른 나무들의 뿌리를 적시는

아버지의 강물이

가문 내 마음 밭에

완두콩도 열리고

감자 꽃도 들깨 꽃도 피게 합니다.

 

언제나 아침이신 아버지

저녁에도 아침같이

세상을 살라 하십니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르는

모래바람 속을 헤매는 철부지 탕아지만

아버지께서 언제나 대문에 켜놓으신

초롱불빛 보고

동서남북 방향을 헤아립니다.

 

오늘도 길 없는 황야에 길을 내시며

길을 가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길은 내 가슴 벌판에 환하고

끝내는 나도 가야 할 길입니다.

 

백발이 나부껴도

오늘도 정정한 걸음으로

길 없는 벌판에 길을 내시며

길을 가시는 아버지.

 

<시선집 『그 흔들림 속에 가득한 하늘』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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