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은
차옥혜
백합, 노루오줌, 범부채 곁에
나무쑥갓을 심었더니
나무쑥갓이 왕성한 번식력으로
빈틈없이 새끼를 치며
백합, 노루오줌, 범부채를
침략하여 덮어버리고 고사시켜
어느덧 나무쑥갓만의 왕국을 이루었다
풀꽃들 뿐이랴
평화롭고 순해 보이는 큰 나무들도
땅 밑에선 뿌리들 끼리
치열하게 영토싸움을 한다
동물 세계는 더더욱
강자만이 꽃이 되는 세상이라지만
사람만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 내려놓고
약한 사람 앞에 고개 숙인 벼가 되고
종이 다른 뭍 생명에게 언덕이 되며
모든 목숨이 함께 살고 승리하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
<문학과창작, 202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