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옥혜 시집 풀잎으로 만나요 꽃으로 만나요작품 해설

풀잎과 꽃과 평화, 그리고 생명 의식

                                                                         허형만(시인, 목포대 명예교수)  
1.
  등단 40년을 지나온 차옥혜 시인의 제15시집 풀잎으로 만나요 꽃으로 만나요는 분단국가에 사는 시인의 평화와 통일 염원, 기후 위기와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의 아픔, 시대적 역사 인식과 민중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생명성으로 가득하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시는 사랑이다. 내 넋에 솟은 풀잎과 꽃을 들고 아픈 세상을, 지구를, 행성을 만난다. 빛을 소망하며.”라고 말한다. 이 말은 가을밭에 모처럼 호밀을 심었다. 호밀이 뿜어내는 강렬한 푸른 생명력은 내게 희망과 꿈을 꾸게 한다. 풀잎 같은 초록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재난은 극복되고 평화롭고도 건강한 새날을 회복하리라. 내 영혼의 꽃 시도 활짝 웃으리라.”고 쓴, 14시집 호밀의 노래(2022, 현대시학)<시인의 말>과 연결되어 있다. 차옥혜 시인의 시에 대하여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점진적으로 적층積層되어 가는 세월의 연륜이 보였다. 후기로 오면서 더욱 유장해지고 부드러우며, 세상을 관찰하는 시각이 한결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평가하면서 차옥혜 시를 평한 논자들은 우선 그의 시가 순수한 영혼의 노래라는 데 공감한다.”라고 말한다.

  차옥혜 시인은 이번 시집을 준비하면서 몇십 년 전 묵은 원고 뭉치에서 까맣게 잊은 자신의 분신, 달을 안고 강 건너는/ 진달래꽃 마주 보며 우는/ 맨발로 사막 헤매는/ 한사코 바람 거스르는/ 세상 말에 귀 아픈/ 세계 부정에 이앓이 하는/ 가엾기도 어여쁘기도 한/ 팔팔하기도 죽기도 한/ 한 방 먹여주고 싶은/ 안아 다독이고 싶은/ 절벽을 기어오르는/ 삼라만상을 껴안은/ 이름 달리한 많은/ ! ! !”(묵은 원고 뭉치 속 내 분신들)를 발견한다. 이와 같은 자신의 분신들은 곧 자아 성찰의 다른 이름이며 객관적 상관물인 존재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많은 작품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불태운 적이 있다. 시인이길 포기했다가도 다시 시인으로 살기를 희망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차옥혜 시인의 다음 시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 이웃, 세계, 우주 품고
잠 못 이루고 아파하며
쓴 나의 시들이
순간 몇몇 가슴에
아니 내 안에서만
피었다 진 꽃일지라도
오늘의 내가
억년 지구의 산물이듯
내 시가
쓰레기로 썩어
억년 후 한순간
어느 계곡 환하게 핀 꽃의
|밑거름이나 될지라도
아니 송두리째 부질없어도
나 죽는 날까지 시인으로 살리

                                              -나의 시가 쓰레기 되어도전문

  시인이 쓴 시는 , 이웃, 세계, 우주 품고/ 잠 못 이루고 아파하며/ 창조물이다. 시인은 자신이 쓴 시가 쓰레기로 썩을지라도 아니 송두리째 부질없어도 시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죽는 날까지 시인으로살기를 다짐하며 오늘 밤도 잠 못 이루고 아파한다.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말한 단순히 자기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존재로 있어야 할 것으로 있는 하나의 존재가 곧 시인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차옥혜 시인은 나를 세상에 밀어내기 시작한/ 하루하루 지는 해 야속하다 않으리/ 사그라져 가는 나를 부질없다 않으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허수아비 나를/ 끝끝내 껴안고 어루만지며/ 괜찮아, 고마워, 수고 많아, 기죽지 마라/ 줄곧 속삭여 주리/ 어린 날 겁 없이 열린 문밖으로/ 아장아장 걸어 나가던 나를 다시 만나리(저녁노을 앞에 서서)라고 노래한다.
2.
  필자는 차옥혜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시애틀 추장(17861866)의 연설문을 다시 읽었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총과 병균과 종교를 앞세우고 쳐들어온 백인들에게 터전을 빼앗긴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 정신은 풀잎으로 만나고 꽃으로 만나자는 차옥혜 시인의 평화 사상과 상통한다.

대지가 비명을 지릅니다
하늘이 통곡합니다
탱크가 지나간 자리
미사일이 날아와 터진 곳
불타고 부서진 건물 틈에
끼이고 묻히고 떨어진 사람시체들
21세기 문명 문화 지성 시대에
무슨 전쟁이라니요
안 돼요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멈춰요 멈춰요 즉각 멈춰요
사람들 무더기로 죽어요
지구 부서져요
당장 무기 내려놓고
풀잎으로 만나요 꽃으로 만나요
분쟁의 대지 봄비로 적셔
새싹 틔워 꽃을 피워 생명 키워
대지 하늘 바다에 평화 합창 울려요
지구 모든 사람 모든 나라
언제나 어디서나 서로서로
풀잎으로 만나요 꽃으로 만나요

                                                       -풀잎으로 만나요 꽃으로 만나요전문

  이번 시집의 표제 시로 시인의 평화에 대한 갈망이 잘 드러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이 시각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가자, 서안 포함), 이란 - 이스라엘 대리전쟁, 수단 내전, 미얀마 내전, 에티오피아 내전 등으로 탱크가 지나가고, “미사일이 날아와터지고, “불타고 부서진 건물 틈에/ 끼이고 묻히고 떨어진 사람시체대지가 비명을지르고 하늘이 통곡한다. 시인은 “21세기 문명 문화 지성 시대에/ 무슨 전쟁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안 돼요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멈춰요 멈춰요 즉각 멈춰요라고 호소한다. “당장 무기 내려놓고풀잎으로 꽃으로 만나라고 호소한다.
  전쟁의 참상은 미사일로 순간 한 도시 한 나라 박살/ 무너진 건물 더미에 묻혀버린 사람들/ , 전기, , , 가족 사라져/ 폐허 더미에 울고 있는/ 피투성이 어린이들(짓밟히지 않는 세상은 어디에)에서 잘 드러난다. “폭격에 부서지고 무너진 집과 도시/ 먹을 것 없어 수돗물 전기 끊겨/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거리를 헤매는/ 온통 시커먼 때로 얼룩진 할머니의/ 공포에 질린 눈동자(눈보라에 떨고 있는 매화)가 가슴 아픈 우크라이나 전쟁터, 특히 이스라엘군이 레이저로 조준한 총소리와 폭발음/ (가자지구에서 학살된 여섯 살 소녀)힌두도 구조대원도 몰살(힌두의 홀), “이스라엘이 산산이 부순 가자지구 길/ 대여섯 살쯤 된 여자 어린아이가/ 동생의 왼쪽 발 부여잡고/ 오른쪽 어깨에 걸머진 채/ 쓰러질 듯 힘겹게 걷고 있다(전쟁터 어린 자매), “미사일 퍼붓고 전기 수돗물 생필품 끊어버려/ 한 달여에 1만여 명 죽고 3천여 명 실종/ 수천 명 환자와 피난민 머물던 병원까지/ 새벽 2시 특수부대 100여 명과 6대 탱크로 진입/ 아비규환(여기는 어딘가)의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시로 고발한다. 그러면서 차옥혜 시인은 전쟁 반대의 아이콘이 된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Guernica를 떠올린다. 게르니카는 1937년 스페인 내전 중 나치의 콘도르군단이 이끄는 폭격으로 파괴되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전쟁을 소재로 피카소는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강렬한 반전反戰 작품을 남겼다.

왜 그토록 서로 날카로우냐
왜 그토록 서로 무기 자랑이냐

전쟁은 절대 없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핵무기는 들썩거리지 말자
어느 쪽이든 핵무기 방아쇠를 당기면
순식간에 양쪽 전멸이다
설득하고 참고 인내하며 풀잎으로 만나야
모두 살고 함께 승리하는 통일이다
자국 이익을 위하여 약한 나라를
힘으로 누르고 뺏고 줄 세우지 마라
강자에게 모든 것을 내주며 비굴하지 말자
약자는 진실과 자존심을 지키며
앞뒤 살펴 적을 만들지 말고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산다
정말로 한반도 통일 원한다면
서로서로 풀잎으로 만나자

                                                        -통일은 풀잎으로전문

  대한민국에서도 6·25로 인하여 애꿎은 사람들 무더기로/ 죄 없이 휩쓸려 죽은 혼들/ 70년 넘게 저승 못 가고/ 바람으로 떠돌며(육이오) 편히 쉬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남과 북이 서로 대치하고 있음에 전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따라서 시인은 왜 그토록 서로 날카로우냐/ 왜 그토록 서로 무기 자랑이냐, “대한민국 음악이 세계를 흔들고/ 대한민국 영화에 세계가 감동하는데/ 훈민정음 한글 말하고 쓰는/ 배달겨레가 70년 넘게 갈라져/ 총부리 맞대고 싸우다니요(봄바람으로 불어)라고 침통하게 묻는다.
  전쟁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핵무기는 들썩거리지 말자라고 애원하는 시인은 난생처음 철원 평화전망대를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평화전망대에 선 그대여/ 한반도에 결코 다시 전쟁 없어야 한다/ 우리를 거름 삼아 평화를/ 심고 가꾸고 키워 만수무강하여라/ 다시 전쟁 나면 모두 전멸(철원 평화전망대에서 들은 말씀)이라는 간절한 말씀을 마음의 귀로 듣는다.
  차옥혜 시인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간절한지 우리 어서어서 서둘러/ 봄바람으로 불어 불어/ 한반도 꽃피워요/ 겨레의 소원/ 민족 통일 이루어요(봄바람으로 불어) 호소한다. 또한 모든 무기 버리고/ 물로 물로 흘러 흘러/ 분단 벽 넘고 넘어/ 우리 소원 통일 이루어요/ 바람으로 바람으로 불어 불어/ 삼팔선 철조망 넘고 넘어/ 우리 소원 통일 이루어요(물로 바람으로)라고 호소한다. “평화 없어 세상 무너져선 안 돼/ 평화 없어 사람 죽어선 안 돼/ 삼천리금수강산에 어서 빨리/ 평화 꽃밭 평화 숲 넘쳐라(국경선평화학교)고 기원하는 시인은 정말로 한반도 통일 원한다면/ 서로서로 풀잎으로 만나길 간절히 바란다.
3.
  차옥혜 시인의 시적 관심사 중 하나는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의 위기와 환경파괴에 대한 염려이다. 필자가 알래스카에 갔던 날, 2009730일자 알래스카 한인신문 1면 헤드라인은 빙하가 사라졌다였다. 북극 바다를 뒤덮었던 빙하가 1년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습 등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위성사진이 신문 1면을 덮었다. 그날 실제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빙하가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차옥혜 시인도 팔십일억 명 넘는 세계 사람들 내뿜는 탄소로/ 자구 내 몸 점점 뜨거워져 기후 위기에 직면(인류세)했음을 지구의 편에서 경고한다.

지구가 병들고 너무 아파서 쏟은
집중 눈물 폭포로 순식간에
신림동 반지하 13살 어린 딸 끼인
장애인 가족 3명 수몰되었어요
강남구 거리 달리던 자동차들 수천 대
둥둥 떠다니다 서로 부딪쳐 부서졌어요
수압으로 거리 맨홀뚜껑 벗겨져
길 가던 중년 남매 하수구로 빨려들었어요
전국 곳곳 산사태로 집 매몰되고 길 사라져
실종된 사람 감감무소식
농경지 물바다 가축들 몰살했어요
어쩌나요! 어쩌나요!
사람들이
숲 마구 없애고 탄소 너무 내뿜어
빙하 녹아 지구 몸 뜨거워져
지구 병 점점 깊어져
더 큰 재앙 자주 올 거라는데요

                                                                         -지구가 너무 아파서전문

  지구가 병들고 너무 아파서 곳곳에서 집중 호우로 피해가 크다. “서울에 115년 만에 느닷없이 쏟아진 집중폭우(위기의 순간에 핀 연꽃들)신림동 반지하 13살 어린 딸 끼인/ 장애인 가족 3명 수몰”, “강남구 거리 달리던 자동차들 수천 대/ 둥둥 떠다니다 서로 부딪쳐 부서짐”, “전국 곳곳 산사태로 집 매몰되고 길 사라져/ 실종된 사람 감감무소식의 상황에 인간은 무력하다. 이러한 호우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미국 어느 사막 천 년 만에 비 내려 호수 생겨// 파키스탄 어느 도시/ 석 달 동안 줄곧 비 쏟아져/ 물에 잠겨 천백여 사람 죽(지구 온도 상승 탓)었다. 기후변화 피해는 폭우뿐 아니라 유럽은 가뭄으로/ 두께 15m 알프스 빙하 녹아/ 9월 말이면 완전히 사라지리라 예상(지구 온도 상승 탓)하고, “기후변화 가뭄으로/ 아프리카 6억 명 인구/ 생존 위험에 놓여 있(아프리카 6억 명 생존 위험)음을 경고한다. 폭설도 예외는 아니어서 “11월 첫눈이 117년 만의 폭설/ 물먹은 무거운 눈 전국 덮쳐/ 항공기, 배 발 묶이고 차량 연쇄 충돌/ 비닐하우스, 주택, 공장, 축사 무너져/ 사람 짐승 깔려 죽고 부상자 속출(습설의 횡포)한 습설의 피해를 고발한다.

페루에 있는 독일 에너지기업 탄소배출 탓으로 안데스산맥 빙하 녹아 빙하호 제방 무너지면 아랫마을 홍수에 쓸려나가고 빙하호 텅 비면 가뭄에 시달리는 주민이 독일 본사를 상대로 독일 법원에 소송 제기

네덜란드 시민들은 화석연료 대기업 상대 헤이그법원에 제소하여
생명권 침해 우려되니 주의하라. 탄소 45% 줄이라.”
는 승소 판결받음

한국 아이 61명과 태아 1명을 대신한 엄마가
미래세대 기본권 침해 마세요.”
라며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헌법 소원 제기

1988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 100대 기업 배출 온실가스는 전 세계 산업 배출량의 70.6%, 세계 곳곳 기후변화 소송 속출

                                                                          -인류와 지구를 위하여전문

  20258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플라스틱 오염 규제 조약을 만들기 위한 국제 협상이 또 결렬되었다는 뉴스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과 미국이 플라스틱 생산량 규제에 끝까지 반대해서다. ‘지구의 미래가 또 좌절된 것이다. 또한 기후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는 탄소배출은 주로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의 대기 중 증가를 말한다. 이 탄소배출은 지구온난화와 극한 기후와 해수면 상승, 그리고 생태계 위기는 물론 식량 위기, 전염병 확산, 난민 발생 등 인간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차옥혜 시인은 인류와 지구를 위하여 걱정하면서 “1988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 100대 기업 배출 온실가스전 세계 산업 배출량의 70.6%”라는 통계를 근거로 제시하며 세계 곳곳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꼽는다. 특히 네덜란드 시민들이 화석연료 대기업을 상대로 헤이그법원에 제소한 결과 생명권 침해 우려되니 주의하라. 탄소 45% 줄이라는 승소 판결을 받았는가 하면 페루에 있는 독일 에너지기업 탄소배출로 독일 본사 상대로 독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한국에서도 아이 61명과 태아 1명을 대신한 엄마가 미래세대 기본권 침해 마세요라며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헌법 소원을 제기한 것 등 인간의 욕망에 의한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 고취는 이미 이 앞의 시집 호밀의 노래(2022, 현대시학)에서 광대한 내 품 안 무수한 자식 중에서/ 가장 생명이 넘치고 아름답던/ 지구가 지르는 비명/ 어처구니없는 지구의 아수라장(지구의 어머니 우주의 탄식), 그리고 당장 지금부터 세계 모든 사람/ 탄소와 쓰레기 줄이기, 분리수거/ 일회용품 안 쓰기 실천하며/ 함께 사는 길 열지 않으면/ 세계는 결국 사라지리/ 지구는 블랙홀에 빠져버리리(지구가 위험하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4.
  차옥혜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 호밀의 노래해설 끝부분에서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가 가진 여리고 예민한 서정성, 그로부터 발현되는 퇴행 불가의 호소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수 문학평론가 역시 차옥혜의 시는 찬란한 생명을 틔울 씨앗처럼 목숨을 살리는 시를 쓰고자한다고 평한 바 있다. 이번 열다섯 번째 시집 풀잎으로 만나요 꽃으로 만나요표제부터 이미 시인의 시적 세계에 대한 생명성과 서정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곧 차옥혜의 시가 기후 위기, 환경파괴에 따른 인류와 지구에 대한 경고 또는 염려는 모두 창조와 갱신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생명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겨울이 끝나기도 전
상사화 언 땅을 뚫고 오더니
봄 문 열리자마자
할미꽃, 모란, 원추리, 산마늘
어느덧 초록 눈 뜨고 웃는다
수국, 접시꽃, 모과 새순 돋고
수선화, 개나리, 목련, 벚꽃 피며
민들레, , 냉이, 씀바귀
떼로 몰려와 반짝인다
떠난 초록 가족 다시 돌아와
뜰을 가득 메운 봄날

안녕! 안녕! 안녕!
반가워 고마워

돌아온 새싹, 꽃과
눈 맞추며 인사하느라
하루해가 짧고 짧은 봄날
설레고 신나는 봄날

이만한 복이 어디 있으랴

                                                                       -초록 가족이 돌아온 봄날전문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겨울의 아다지오는 다시 봄의 알레그로로 이어지면서 쇄신, 부활, 소생의 시절인 봄이 온다. 자연은 겨울이 끝나기도 전/ 상사화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생명력을 부여한다. “떠난 초록 가족 다시 돌아와/ 뜰을 가득 메운 봄날은 생과 희열의 폭발로 생기를 띤다. 그 증거로 봄 문 열리자마자 할미꽃, 모란, 원추리, 산마늘, 수국, 접시꽃, 모과 새순, 수선화, 개나리, 목련, 벚꽃, 민들레, , 냉이, 씀바귀떼로 몰려와 반짝인다.” 시인은 돌아온 새싹, 꽃과/ 눈 맞추며 인사하느라/ 하루해가 짧은”, 그러기에 더욱 설레고 신나는봄날을 만끽한다
  차옥혜 시인은 꼭 봄에서 겨울까지 사계절에서만 생명성을 시적으로 승화시키는 건 아니다. 강력한 태풍 몰려와 가로수들 부러지고 뿌리가 뽑혀 쓰러진 날, 숲의 나무들만은 혼자 우뚝 선 나무보다/ 여럿이 모여 숲 이룬 나무들/ 태풍과 싸워 이겼(숲은 태풍을 이겼다)음에 감격하고, 집 뒷산에 불이 나자 노부부가 풀어준 소들이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가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다시 몽땅 타버린 집터를 찾아온 장면에서 자기들만의 말과 몸짓으로, 그들만의 믿음 신뢰 지혜 사랑으로, 서로서로 격려하고 부축하며 응원하며 불타는 산길을 헤쳐 돌아온 소들!”(불탄 집에 소 떼 돌아오다)을 우러르고 우러르는 시인의 따뜻한 감성이 새롭다.

보아라
화마가 휩쓸고 간
검은 산에 새싹 움텄다

희망이 눈 떴다
눈물을 삼키자 아픔을 버리자
다시 시작이다

숲이 돌아오리니
뜨거운 불 견딘 씨앗이
온 힘 다하여 뿜어낸 싹
가꾸고 지키며 숲을 기다리자

보아라
불꽃 춤추던
숯검정 뒤집어쓴 숯내 나는 산에
새싹 돋았다

                                                                         -불탄 산에 새싹 솟았다전문

  하동군 옥종면 두량리의 천년을 살아온 은행나무가 산불에 온몸을 태웠으나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났다는 뉴스는 신선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불꽃 춤추던” “화마가 휩쓸고 간” “검은 산” “숯검정 뒤집어쓴 숯내 나는 산새싹이 움트고 돋아남은 분명 자연의 섭리이며 끈질긴 생명력의 증거이다.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숲이 돌아오리니/ 뜨거운 불 견딘 씨앗이/ 온 힘 다하여 뿜어낸 싹/ 가꾸고 지키며 숲을 기다리자는 시인의 간절함은 그만큼 자연의 생명력을 믿기 때문이다.  
  시인에게는 “33년 지극정성 가꾼 작은 숲(내 안에 사는 숲)이 있다. 이 숲은 시인의 마음에 살고 있는 숲으로 서로 온갖 이야기 속삭이고 철 따라 꽃 피고 열매 맺는다. 시인 안에 사는 숲의 상징성은 자연의 생명성이다. 이 생명성은 원뿔형 주목 나무 벽으로 둘러싸인/ 지붕 없는 내 한 평 초록 방에 들어가/ 소나무 밑 유리 탁자 앞 의자에 앉아/ 반짝이는 수만 잎새 보고 있으면/ 나는 어느덧 나무가 되어 잎새 팔랑(내 숲속 초록 방에 들면)거리는 물아일체의 경지에 몰입된다. 그렇다. 이 시집에서 보여주는 차옥혜 시인의 생명 의식은 지구의 온 생명을 아우르는 순수한 영혼의 울림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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