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의 상반성과 시적 감동
김석환
시는 언어의 외피 속에 감추어진 의미, 즉 내포적 의미를 포착하여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상적 언어 양식과 다르다. 그것은 시가 어떤 대상의 변화하는 형상들 속에 내재된 변화하지 않는 본질을 찾는 언어 예술이기 때문이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아이러니는 시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한 아이러니는 여러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공통적으로 2중성과 상반성을 기본적인 특성으로 갖고 있으며 겉과 속이 서로 대립될 경우 성립한다. 즉 시인이 더러운 외피 속에서 순결을, 큰 것 속에서 작은 것을, 사소함 속에서 소중함을 발견하고 그 상반된 겉과 속을 동시에 바라볼 때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독자들은 그 아이러니 구조를 통하여 정서적 감동이나 충격을 받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현대시가 궁극적으로 아이러니를 추구하는 것도 그런 힘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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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나무가 홀씨를 날려
억울하고 화난 세상을
캄캄하고 아픈 시간을
건너고 있다
-차옥혜 시인의 「쓰러진 나무가 홀씨를 날려」일부
위의 시에서 쓰러진 나무는 그냥 썩어가지 않고 자신의 생명력과 꿈을 담은 홀씨를 날리고 있다. 앞 연에서 보면 그 나무는 “열심히 키를 키우고 잎을 매달아/하늘에 닿을 듯했는데”장대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가지들이 썩는 나무는 오히려 홀씨를 날림으로써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 꿈의 나라인 영원으로 가고 있다.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하며 꿈을 키우던 나무가 쓰러지고, 그 나무의 죽음이 다시 홀씨로 부활하여 꿈을 이루는, 즉 나무의 의지와 그 결과의 상반성이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시인은 그러한 아이러니를 통하여 인간의 운명이 자신의 의도나 욕망보다 자연의 섭리에 지배되는 것이며 그러기에 겸손한 삶의 자세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시문학 2003년 12월호 170-172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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