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의 몸을 보았다
차옥혜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내 책상에 펼쳐놓은 노트에서 옷을 벗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 보라
일곱 가지 색깔이 나란히 사이좋게 반짝이는
색동 몸이다
햇빛의 아름다운 몸을 가만히 어루만지니
어느덧 햇빛이 부피도 무게도 없이
내 손등 위에 있다
세상에 가득하면서도
제 자리나 집이 없다
올 사람들의 영혼이 그러할까
떠난 사람들의 넋이 그러할까
무엇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모든 것과 함께 하면서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하는
햇빛을 닮으면
내 몸도 무지개가 될까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이 될까
내 노트 위에서 쉬고 있는 햇빛의 맨 몸이
손가락 하나 안 대고
나를 사로잡는다
<문예2000, 1997년 2월호>
<경향신문 1997.2.26.자 재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