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위험하다

            - 내 생태시를 되돌아보며 -

                 차옥혜               

 

  생태시는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 생물이 환경과 맺고 있는 관계를 토대로 하며 시인의 생명과 자연에 대한 사랑에서 태어난다. 유난히 자연과 생명에 예민한 촉수를 가진 시인들은 대부분 큰 범주에서 생태시인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생태시를 의식하고 시를 쓰지는 않았다. 어려서부터 자연과 가까이 살며 자연을 좋아하며 산 탓에 어른이 되어 도시생활을 하면서도 늘 자연을 그리워했다. 20여 년 전부터 틈만 나면 시골 황토밭에서 직접 나무와 풀꽃과 곡식과 야채를 키우면서 저절로 우러나온 시들을 모아 2010년 봄 시집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를 시문학사에서 출간했는데 몇몇 분이 이를 ‘생태시집’이라고 서평했다.

  김응교(시인-문학평론가) 선생은 “우주가족의 초록시”라는 제목으로 쓴 이 시집에 대한 해설에서 “이번 시집은 물리적으로 한 권의 책이지만 영적으로는 만권의 생태계 도서관이다. 차옥혜 선생의 초록시에는 기존의 생태시와 다른 깊은 매혹이 있다. 그녀의 초록시는 철저하게 ‘가족 공동체’로 삼라만상을 파악하고 있다. (···) 식물글자의 세계를 위해 주장하고 실천하는 ‘모성적 지행합일의 열매’다”라고 썼다.

  문덕수(시인-문학평론가-예술원회원) 선생은 “생태주의를 선명하게 내세운 점에서, 이 시집은 특히 주목된다. (···) 차옥혜의 이 시집이 보여준 생태주의는 인간존재를 존재자의 전체 연관 속에 정착시키는 문제를 체험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환경이나 생태문제를 신체적 레벨의 자각을 토대로 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 생태시의 풍요한 수확”(『시문학』 2010년 4월호 ‘북리뷰’)이라고 했다.

  송용구(시인-문학평론가-고려대 연구교수) 선생은 “ ‘자연’과 인간의 공존 및 공생을 추구하는 ‘생태주의적’ 경향이 차옥혜 시인의 창작 여정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의 몸 속 세포마다 올올이 스며있는 ‘자연’과의 연대의식連帶意識이 육화肉化된 언어의 열매로 거듭나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 시인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머무르며, 묻혀야할 ‘고향’은 ‘흙’, ‘물’, ‘바람’, ‘나무’, ‘풀잎’과 한 가족이 되어 서로의 생명권生命權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생태사회’ 혹은 ‘에코토피아’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필자(송용구)는 차옥혜 시인의 시를 ‘생태사회를 미시적微視的으로 집약시킨 마이크로코스모스’라고 규정해본다. 2010년 시문학사에서 출간된 시집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는 차옥혜 시인의 생태의식生態意識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생태시집’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시문학』2011년 6월호 기획 특집 6 “한국과 독일의 ‘생태시生態詩’ 100인선”)고 한다.

  이 분들의 논평을 읽으면서 새삼 이 시대 생태시의 울림과 여운을 생각하며 천생 생태시인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새삼 자각한다.

  현재 내 생태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지구의 기후변화, 지구의 여섯 번째 멸종 시작,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 같은 긴박한 생태문제들을 내 시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몰고 온 문제들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온 몸으로 껴안고 사랑하며

땀 흘려야 쓸 수 있지만

쓰고 난 후에도 보살피지 않으면

제멋대로거나 사라지지만

날마다 새로운 파노라마 초록시이다

언제나 설레고 아름답고 편안한

숨 쉬는 생명시이다

옷은 황톳물과 풀물로 얼룩지고

호미 들고 동동거려 팔다리가 쑤셔

볼품없이 늙고 여위어도

식물 글자로 시를 쓰는 것이 즐겁다

 

어느 날 들판이 문득 나를 불러

땅에 식물 글자로 시를 쓴 지 어언 20년

출판할 수 없는 시집 한 권

지금 내 몸과 영혼의 집이 어여쁘다

  -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전문

 

  1989년부터 식물글자로 황토밭 원고지에 시를 쓰면서 몹시 고되고 힘들기도 했지만 자연과 인류가 함께 생명과 평화로 가는 길을 찾는다는 의미와 보람도 있었다. 식물 글자로 쓴 시집! 내 몸과 영혼의 집이 아름다웠다.

 

풀과 나무만 보면 설레고 좋아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어대니

, 다람쥐, 여치, 매미가 와서 살고

꽃은 나비와 벌을 데리고 줄지어 찾아와

저절로 한 세상이 열렸다

나무나라 지키려 하루에 땀 한 말 쏟으니

평화는 서 말로 오고 사랑은 다섯 말로 솟아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름다움뿐이다

나무와 풀이 나를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제 몸에 벌레를 잡아달라 하고

웃자란 머리칼을 예쁘게 깎아달라 한다

나무와 풀은 저희들을 돌보느라

애면글면 일하는 내가 안쓰러워

어머니 드세요 하며

싱싱한 열매와 잎을 듬뿍 내밀고

나에게 우주의 비밀이 담긴 편지를 쓴다

                                       -「나는 전생에 나무였나봐」

 

  나는 내가 키운 식물들과 부모-자식 사이처럼 다정했다. 내가 열심히 돌본 만큼 식물들은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그런데 작년부터(2010년) 이상했다. 내 의지대로 황토밭에 식물 글자로 시가 써지지 않았다. 봄이 되어도 늦추위가 계속되어 꽃은 피었어도 수정을 해줄 벌이나 나비가 부족하여 살구나 매실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여름엔 해가 뜬 날보다 비가 온 날이 더 많아 열무는 그냥 밭에서 녹아버렸다. 호박도 무르고 썩는 것이 많았다. 가을이 왔으나 백년 생 세 그루의 감나무엔 겨우 스무 개 감이 매달렸다. 예년 같으면 천 개 가까운 감이 파란 하늘에 꽃처럼 박혔을 것이다. 호두나무는 몇 개 안 되는 열매가 익기도 전에 나뭇잎들이 모두 낙엽이 되었다. 고추와 피망도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더니 병들어 쓰러졌다. 억척스럽고 왕성한 생식력을 자랑하는 가지조차 열매 몇 개를 매달더니 시들었다. 추석이 지나자 온 나라에 배추파동이 생겼다. 배추가 잘 자라지 않아 물량이 부족하여 한 포기에 15,000원까지 치솟았다. 고구마 수확도 예년의 반절도 안 되었다.

  해마다 내가 가장 공들여 많이 키우는 서리태는 10월 중순 풋 콩을 쪄 먹을 때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대부분 빈 콩깍지들이었다. 11월까지 기다리면 콩알이 여물어 추수할 수 있겠지 생각했다. 아직 콩잎은 무성하고 푸르렀고 가을 햇볕은 따뜻했다. 그런데 시월 하순에 느닷없이 영하의 한파가 밀어닥쳤다. 푸르던 콩잎들은 하루아침에 흙빛으로 변하여 얼어 죽어버렸다. 콩밭은 전체를 삶아놓은 것처럼 주저앉았다.

  콩잎을 먹으러 온 고라니가 죽은 콩밭을 서성이다가 벼를 거둔 논을 가로질러 산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런 모습은 내가 쓴 파노라마 생명시가 아니다. 마른 콩깍지를 털고 나온 잘 여문 까만 콩들이 햇볕에 몸을 말리고 겨울을 건너 영원으로 가며 환희에 차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황토밭 원고지! 나는 이 낯설고 무서운 풍경에 소름이 돋았다. 처음 당하는 흉년이었다. 올 것이 오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몰고 온 대 재앙의 전조인가?

  내 시를 지우고 누가 써놓았는지 모르는 죽음의 시 앞에 선 내게 다음과 같은 시가 솟았다.

 

      생명과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는 서리태 글자로

황토밭 원고지에 쓴 파노라마 초록 시가

시월 느닷없이 얼어 죽었다

 

여름내 비가 너무 자주 와

가을이 되고도 여물지 못한 서리태 글자

늦가을이면 익을까 기다렸는데

무더위도 비도 무릅쓰고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땅강아지처럼 엎디어

김매고 북돋아 주었는데

무성하고 푸르던 평화 시가

꿈을 꾸던 사랑 시가

때 이른 된서리에 얼어 죽었다

콩깍지도 못 매단 서리태 글자

빈 콩깍지만 매단 서리태 글자

어쩌다 못 생긴 풋콩 몇 알 밴 서리태 글자

모두 선 채로 얼어 죽었다

 

내 몸과 영혼의 집이 무서워졌어도

얼어죽은 서리태 글자를

겨우내 눈꽃과 비벼 거름으로 삭혀

생명과 평화와 사랑의 노래 다시 울릴 때까지

봄마다 튼튼한 서리태 글자로 황토밭 원고지에

초록시를 쓰고 또 쓰리라

                                       -「서리태 글자로 쓴 시가 얼어 죽었다」 전문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이 이상기후로 시달리고 있다.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는 지난해 너무 가물어 산불이 여러 날 계속되었고 곡물 수확량이 부족하여 일정 기간 수출을 금지했다. 세계 도처에서 생긴 긴 홍수나 극심한 가뭄으로 곡물 값이 치솟았다. 빵이나 식료품들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올 초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는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올해는(2011년) 작년보다 이상 기후의 피해가 더 심하다. 우리 집 두 그루 살구나무는 아예 열매를 맺지 못했다. 나는 아예 서리태 경작을 포기했다. 장마가 끝났는데도 비오는 날이 계속되어 상추, 단호박, 고추, 피망, 케일 등이 녹아 죽어버렸다. 이제 우리나라 기후가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지금 팔월 초인데도 비가 자주 오고 있어 가을 추수 전망이 어둡다.

  한 나라의 가장 큰 안보는 국방과 과학과 경제보다 식량이다. 돈으로 먹거리를 살 수 없는 대기근이 온다면 식량이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 평소 국민의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농경지를 확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서슴없이 농경지를 없애왔다. 국내 밀과 콩 수요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지 오래되었다. 게다가 현 정부는 자연을 거스르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많은 하천부지의 유기농 단지와 강 주변의 농경지를 없애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오랜 세월 과다 생산을 위한 개발과 성장은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를 가져왔고, 그로 인한 기후 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 사막이 늘어나고 벌써 어느 나라는 극심한 가뭄과 고온 현상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녹기 시작해 남태평양의 어느 섬은 물에 잠길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지난 7월 27일 서울 우면산 산사태로 인한 참사는 하루 동안에 300mm가 넘는 104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도 문제였지만 무분별한 개발도 원인제공에 큰 몫을 차지했다.

  오늘날 기후변화가 지구의 가장 큰 위기라고 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인간이 살만한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라고 한다. 그런데 1947년부터 유기농법을 연구해온 미국의 로데일 연구소는 인류의 건강뿐만 아니라 지구를 치유하고 살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유기농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기농법은 건강한 표토에 대기 중의 탄소를 흡수해 가둠으로써 전혀 이런 기능을 못하는 관행농법에 견주어 15∼28% 탄소저장률을 나타낸다고 한다. 미국의 농토 전부가 유기농으로 전환된다면 미국에서 사용되는 자동차 절반 이상을 없애는 효과와 맞먹는다고 한다. 또한 유기농법은 에너지 소모가 많은 질소질 비료와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관행농법의 2분의 1에서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유기농법 같은 대안이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이며 유기농 생산자와 소비자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라고 어느 학자는 말한다. 그러니 유기농 농가들을 각 국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

  유기농법으로 곡물을 경작하는 녹색 생활을 통하여, 그리고 문명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저 탄소 운동과 실천을 통하여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막아야 할 것이다.


   지구의 여섯 번째 멸종 시작

  지구의 역사 5억 4천만년 동안 지구는 공룡의 멸종이나 빙하기로 인한 생물들의 대멸종이 다섯 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섯 번째 멸종이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매일 1종의 생물이 멸종해가고 그 속도는 정상 속도보다 1만배 정도 빠르다 한다. 멸종은 진화에서 유전자의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주범이 인간이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통합 생물학 교수이며 대학 고생물학 박물관 큐레이터이고 척추동물학 박물관 고생물학 연구자인 안토니 바르노스키 교수는 앞으로 300년에서 2200년 사이에 또 한 번의 대멸종이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므로 동식물들의 서식지 파괴, 외래종 유입, 질병, 환경오염, 지구자원의 소모, 지구 온난화 같은 멸종 촉진 주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생물을 위한 자원 투입과 제도적 기반 마련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환경 친화적으로 삶을 바꿔서 모든 생물들과 함께 살아남을 것인지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살던 초원을 사람들에게 빼앗긴

인도의 엄마 코끼리와 아들 코끼리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도시에 나타나

달리는 차를 쫒아가 들이받고

집를 부수기도 하더니

달아나는 사람을 밟아 죽이거나 다치게 하다가

생포되었다

 

붙잡힌 코끼리 모자가

긴 코를 하늘로 쳐들고

소리치며 울고 있다

 

    -「성난 코끼리 모자」 전문

 

  미국 콜로라도대학 명예교수(생태학, 진화생물학)이며 동물 행동학자 마크 베코프는 그의 저서 『동물의 권리 선언』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른 건 분명하지만 결코 그들보다 더 우월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동물들도 사람처럼 인지능력이 있고 온정, 사랑, 연민, 배려, 존경, 존엄, 평화를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존재라는 것을 숱한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겨울 구제역 파동 때 많은 돼지와 소를 살처분했다. 인간들 틈새에서 사는 동물들의 수난에 대하여 이런 대처방식을 계속해야 할까? 대안은 없을까?

  지난 겨울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탄자니아 국립공원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에서 동물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보았다. 비록 먹이사슬의 위험에 노출되고, 한 여름인데도 드문드문 작은 나무들이 있거나 빈약한 초원뿐인 척박한 땅에서 살고 있었지만 평화로워 보였다. 하긴 기름진 땅이었다면 어떻게 동물들의 차지가 되었겠는가.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 동물 나라

동물들이 가장 많이 산다는

응고롱고로로 가는 길가

사람과 자연과 짐승이 함께 사는

경계 없는 작은 마을

 

얼굴이 까만 아이들이

하얀 눈과 하얀 이를 반짝이며 놀고 있다

코끼리 몆 마리가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나뭇잎을 코로 어루만지다가

코로 감아 몸에 집어넣는다

코끼리 등엔 아이들의 웃음소리 딩굴고

햇빛은 아이들의 발등을 간질이다

코끼리 코에서 미끄럼 타다

이집 저집 지붕 위를 뛰어다닌다

고목 우듬지에서 잠시 쉬던 구름이

아이들과 코끼리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든다

바람이 아이들과 나뭇잎과 코끼리를 씻어준다

-경계가 없는 마을전문

 

  사람과 동물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마을에서 본 코끼리는 행복해 보였다. 코끼리는 화장실 때문에 이 마을에 들른 관광객들 앞을 무심히 지나 천천히 나뭇잎을 순례하러 갔다. 나는 이 행복한 코끼리와 불행한 인도 코끼리를 오래도록 묵상하며 마음이 아팠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

여름 한낮 적도의 따가운 햇살 아래

마른 강의 어느 물웅덩이에서

누와 얼룩말 몇 마리가 섞여 목을 축인다

지평선 어디서 급히 뛰어오거나 걸어온

수 천 마리 누 떼와 얼룩말 떼들이

강둑에서 몇 줄로 꼬리를 이어 서서

물 먹을 차례를 조용히 기다린다

줄은 멈춰선 듯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물이 금시 바닥을 드러낼 것 같은데도

한 마리도 새치기를 하거나

조급하게 뛰어들지 않는다

물을 먹은 누와 얼룩말은 올라와

드문드문 있는 낮은 나무 아래서

서로 몸을 대고 앉았거나

그늘을 못 찾은 놈들은 그냥 햇볕 아래 서서

평화롭게 쉬고 있다

-동물들에게 두 손 모아 절한다전문

 

  동물나라에서 높은 질서의식과 관용을 보여주는 동물 떼를 목격한 것은 행운이었고 감동이었다. 동물들도 인격체로 존중하고 대접해야 할 사람들의 친구라는 사실에 둔감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

  지난 3월 11일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그 여파로 붕괴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유출되기 시작했다. 사고 후 여러 달이 지났지만 원전의 완전한 복구는 요원하고 나는 아직까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독극물은 바다를 오염시키고 죽음의 재는 기류를 타고 대지를 오염시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근처 많은 사람들은 직장을 잃고 집을 떠나 유랑생활을 하고 있고 못 떠난 사람들은 방사능 섞인 공기를 마시며 자식들의 앞날이 두려워 밤잠을 설친다고 한다.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어쩌다 일어난 실수였고 원전은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발생하지 않는 청정한 에너지라는 정부의 말을 믿어왔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원전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원전은 자연재해 앞에서는 언제고 대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핵폭탄과 다름없는 위험한 것이다. 기류를 타고 확산되는 방사능은 한 국가만의 일이 아니다. 편서풍만 부는 것이 아니고 지난 3월과 4월엔 동풍도 있었으며 이상 기류도 있어 우리나라에도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지만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암을 유발하는 방사능은 몸에 들어가면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작은 양이라도 여러 번 쌓이면 좋지 않다. 만약 서해 건너편 우리나라를 마주보고 있는 산둥반도에 많이 있다는 중국 원전에서 사고가 나는 날은 우리나라가 직격탄을 맞는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일은 방사성 폐기물의 독성이 수백만 년 이상 지속 되고 폐원전도 지을 때보다는 더 많은 비용을 들여 계속 관리하지 않으면 언제고 방사능을 뿜어 쓰지도 않는 자손들에게 두고두고 뒤처리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부터 이미 태양열과 풍력발전 같은 친환경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며 원전 감축을 준비해왔고,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지난 5월 30일 세계에서 제일 먼저 탈원전을 선언했다. 17기의 원전을 2022년까지 완전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성과는 끊임없이 원전 반대운동을 펼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제일 먼저 원전 앞에서 원전 철폐 시위를 벌린 깨어 있는 독일 시민의 힘이다. 뒤이어 스위스, 이태리, 덴마크, 스웨덴도 원자력 포기 결정을 내렸다. 눈앞의 경제적 손실이 막대할지라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들 국가들의 탈원전 선언이 내게는 왜 눈물 나는 사건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원자력 발전량 세계 6위인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있는 21기의 원전에다 2024년까지 14기를 더 짓겠다는 계획이 아무 저항 없이 추진되고 있다. 이 계획대로라면 원전 밀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되는 것이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귀 힘으로 사는 토끼

아무리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거리는 토끼

귀만 잡히면 꼼짝 못하는 토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로

30km 떨어진 농장에서

어미 토끼가 방사능에 오염된 풀을 먹어

귀 없는 토끼가 태어났다

 

귀 없는 새끼 토끼는 귀 있는 토끼들 틈에서

풀을 먹는다 외로움을 삼킨다

다른 토끼들이 움직이는 소리도

바람 소리도 빗방울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세상에서

풀을 먹는다 슬픔을 깨문다

 

덜 편리하고 덜 빠르고 덜 밝고

덜 풍요롭게 살아도

모든 생명이 꽃이 되게 하자고

유럽 여러 나라들은 탈원전을 선언했는데

우리나라는 빽빽한 원전에 순풍을 달고

원전 밀집도 세계 1등 나라 되게

원전을 더 지을 거란다

 

귀 없는 새끼 토끼가 억장이 무너져서

풀을 먹는다 노여움을 씹는다

                                         -귀 없는 토끼전문

 

  비가 내리면 빗물 먹는 나무들이 불안하고 지구와 모든 목숨들이 불안하다.

  2011년 8월 3일자 신문 보도에 따르면 사고를 일으킨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1호기와 2호기 원자로 건물 사이 배관에서 40분가량 피폭되면 사망할 정도의 높은 방사선이 존재하는 게 발견되었다. 또 8월 4일자 보도에 따르면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 30km 떨어진 한 농장에서는 지난 4월 말경 귀가 없는 기형 토끼가 태어났다. 어미 토끼가 임신기에 사육장 주변의 방사능에 오염된 풀을 먹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어떤 기형인과 기형동물이 태어날지 모를 일이다.

    덜 편리하고 덜 빠르고 덜 밝게 살자

  러시아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 호수를 보았다. 아직도 개발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존재한다는 것이 반가웠다.

 

바다보다 깊고 맑고 푸르고 젊고 고운

지구의 눈동자 여름 바이칼호수가

줄기찬 자작나무 숲과 오색 야생화 벌판과

끝 모를 초원과 잠꾸러기 황무지와 산맥들 가운데서

구름꽃 피우며 깨끗하고 서늘한 바람을 뿜으며

아직도 원시의 하늘눈을 뜨고 있어요

햇살들이 은빛 몸을 반짝이며 헤엄치는 바이칼호수를

순수한 자연이 정답게 소곤대는 사람의 옛 고향을

바이칼호수처럼 사는 호숫가 숲속 통나무집 사람을

보고 또 보니

태초의 호수이고 초원이며 숲이자 산맥인

태초의 하늘이고 햇빛이며 구름이자 바람인

태초의 야생화이고 자작나무이며 미인송인

참 나를 보았어요 참 나를 만났어요

그러나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연을 껴안고 춤을 추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소리도 들을 수 없어

실망하고 후회하며 되돌아가네요

-여름 바이칼호수전문

 

  “여름 바이칼 호수”는 순수한 자연이 있고 건강한 생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를 말하는 대명사이며 우리가 회복하고 가꾸며 살아야 할 미래의 마을이다.

  바이칼 호수 속에 있는 알혼섬은 한민족의 시원이라고 한다. 구석기 시대 해빙기에 바이칼 호수에 큰 홍수가 일어나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이 남하해 한반도 일원에 정착했다고 한다. 바이칼 호수 주변의 브럇트 민족과 한국인의 유전자가 일치한다고 한다.

  이 알혼섬에 있는 러시아인의 통나무집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마당은 사람들이 걸어 다닐 정도의 길만 남기고 모두 소똥이 듬뿍 담겨진 야채밭으로 가꾸고 있었다. 호박, 토마토, 오이, 케일, 양배추가 싱싱하고 큼직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감자밭도 푸르렀다. 거의 모든 식재료를 자급자족하고 있었다. 닭과 돼지와 소 우리도 있었다. 그런데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니라 재래식이고 더구나 목재 발판 가운데 구멍만 뚫어 분뇨를 모아두는 것이었다. 세면대에는 수도꼭지도 없고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 씻는 방식도 아니었다. 17명의 숙박 인원이 사용할 공동세면대에는 수도꼭지 대신 5리터 가량 용량으로 보이는 양철물통 2개에 각각 손가락 크기의 대롱이 붙어 있고 이 대롱을 손바닥으로 탁탁 쳐올릴 때마다 찔끔찔끔 나오는 물로 손을 씻고 세수를 해야 했다. 물이 떨어지면 옆에 있는 큰 양철통에서 양철 바가지로 물을 퍼서 담아야 했다. 주인아저씨가 양동이로 어디선가 물을 길어다 수시로 보충을 했다. 물이 많은 호수 속 섬에서 이렇게 물을 지독히 아끼며 살고 있었다. 생활오수를 많이 흘려보내면 결국 세계에서 가장 맑은 물이라는 바이칼 호수도 결국은 오염될 것이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물을 절약하는 현지 주민의 친환경 생활양식이 존경스러웠다. 물을 콸콸 흘려가며 쓰던 한국인 관광객들은 몹시 불편해 했다. 생태계와 환경을 위하여 매사 실천하며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그래도 참고 견디며 생명과 지구를 위해서 가야할 길이다. 사랑과 생명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리라.

  이제 우리는 지구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삶의 최고의 가치에서 성장을 내려놓고 개발을 자제하여야 한다.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생활을 고쳐나가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를 없애야 한다. 효율, 편리, 속도, 풍요, 이윤 같은 것을 과감히 버리고 좀 더 불편하고 좀 더 가난하고 좀 더 느리고 덜 밝은 삶을 살아야 한다. 덜 쓰고 덜 먹고 덜 버려야 한다. 그리고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과 동물과 자연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대접해야 한다.

  삶의 방법을 바꾸지 않는 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생태계는 파괴될 것이며 생물들은 멸종의 길을 갈 것이고 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인류를 병들어 죽게 할 것이다. 진실로 지금 지구가 위험하다.

  나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믿는다. 글의 신비로운 힘을 믿는다. 생태시는 잠자는 영혼을 깨울 것이다. 생태시를 쓰는 일은 사랑, 생명, 평화운동이며 뭍 생명과 지구를 구하는 일이다. 시인은 당대의 아픔을 우는 곡비이리라.

<시집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2012>

※ 시문학  2011년 11월호 수록한 글을 일부 수정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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