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나의 산소, 세종대왕이 내게 깃든다 

                                                                                 차옥혜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문밖에 배달된 신문부터 들여오면서 1면 기사를 훑어본다. 아침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끝낸 뒤 못 다 읽은 신문을 마저 읽고 난 후 인터넷을 열어 이메일을 점검하고 그사이 특별한 뉴스가 또 없는지 인터넷 뉴스도 본다. 아침저녁으로 지구인들의 자유와 평화, 뭍 생명의 행복과 자연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나는 늘 세상 돌아가는 일이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주로 집안에 머물지만 내 눈은 한글이라는 창문을 통하여 수시로 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인터넷을 뒤적인 다음 시간이 나면 컴퓨터로 밀린 원고를 쓰거나 미완성 시를 가필하거나 책을 읽는다. 오후 3시경이면 우편함에서 꺼내온 문우들의 저서, 각종 잡지와 편지, 심지어 광고물까지 읽고 정리한다. 틈틈이 장을 보러 길거리에 나서도 즐비한 건물들의 간판과 표지판들이 내 눈을 분주하게 만든다. 시골 황토밭에서 야채를 가꾸고 잡초를 뽑거나 웃자란 나무 가지와 시든 꽃대를 베어내는 따위의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한글을 대하며 사는 것이다. 내 하루는 거의 한글에서 시작하여 한글로 끝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잘 써지지 않는 글이 있으면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걱정이 되어 자다가도 깨어 이리저리 머릿속으로 문장을 써본다.

  내 정신은 한글을 통하여 양식을 공급받아 성장하고 깨치며 그 영토를 넓혀간다. 얼굴도 모르는 옛 성현이나 문호, 이 시대의 세계적 지성이나 문인과의 정신적 교류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현실을 통찰하고 내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한글의 힘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매일 매일 한글로 쓴 문장을 읽고 한글로 문장을 쓰면서 살고 있다. 한글은 나의 산소다. 그러니 나는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에의 은혜로 사는 셈이다.

  머리가 둔한 나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지 않았다면 아마 까막눈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한자가 어려워서 책 읽기를 멀리하여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한 평도 안 되는 하늘만 보고 살며 실제로 세상이 얼마나 광활한지 몰랐을 것이다. 세상과 사물에 캄캄한 내 정신은 말라비틀어져 나는 지금 바보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삶을 글로 담아내는 즐거움에 사는 내가 요즈음 유행하는 어법으로 “나는 시인이다”고 혼자 중얼거려보며 웃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조선의 후예인 것, 한국인인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역사에 세종대왕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하고 1446년 10월9일에 반포한 훈민정음은 만든 사람과 반포일과 만든 원리가 알려진 세계 유일의 과학적인 문자이다. 게다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문자이다.

  세종대왕이 직접 쓴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은 훈민정음으로 번역되어 온 국민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쌔.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않다.) 

     이런 젼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저 할빼 이셔도 

            (이 때문에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마참내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 하니라.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위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맹가노니

            (내가 이를 가엽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쑤메 뼌안킈 하고져 할 따라미니라

           (모든 사람들이 쉬이 익혀서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 글은 세종대왕이 한자를 몰라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배려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세종대왕이 내 마음에 깃든다. 영원히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리라. 빛나는 참 된 삶은 죽어도 넋은 두고두고 후세 사람들의 마음속에 머물게 된다.

  정치가는 많아도 존경받는 훌륭한 정치가가 없는 우리 시대에 훌륭한 정치가이기도 했던 세종대왕이 그립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 이외에도 백성의 편의를 위하여 두루두루 행정제도를 정비했다. 징발된 군인은 기일 전에 되돌려 보내고, 노비는 처우를 개선하여 주인이 혹형을 가하지 못하게 하여 노비를 주인이 실수로라도 죽이면 처벌하며, 관비의 출산휴가를 7일에서 100일로 늘리면서 출산 1개월 전부터 쉴 수 있게 하고 남편에게도 휴가를 주었다. 560년 전에 서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획기적으로 시행한 것이다. 호화방탕하고 국가와 국민을 소유물로 여겨 함부로 짓밟고 사리사욕만 채우며 나라와 백성의 안녕엔 도무지 관심이 없는 나쁜 왕들이 흔 하던 시대에 세종대왕처럼 혼신의 힘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일한 왕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역사에 몇 명이나 될까?

  태종이 세자를 폐하고 셋째 아들인 충년대군(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전격 양위하면서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자못 학문을 좋아하고 정치를 알아서 매일 큰일에 왕께 의견을 아룀이 진실로 합당다.”고 했다 한다.

  세종대왕은 무섭게 공부하며 책 속에서 길을 찾았다. 독서는 유학의 경전뿐 아니라 역사, 법학, 천문, 음악, 의학 등을 망라하였고 경서는 거의 100번씩을 읽고 다른 책들은 30번을 읽어 다방면에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습득했다. 집현전을 만들어 학자들을 모아 연구하게 하며 책의 내용과 이치를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더 깊은 생각을 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윤리, 농업, 지리, 측량, 수학, 약재 등의 책도 많이 편찬하여 인쇄기술 발전을 촉진시켰다. 또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를 만들어 천문학 등 과학을 발전시켜 국민생활 향상에 도움을 주었고, 향악과 아악을 정리하게 하여 음악도 발전시켰으며, 더 나아가 6진을 개척하고 쓰시마(지금은 일본 영토)를 정벌하여 국토도 넓혔다. 세종대왕은 문무를 함께 발전시켰고 유교정치를 하면서 불교도 포용했으며, 예술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토대 위에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였고 아카데믹하면서도 실용적인 품성을 가진 지도자였다.

  한 나라에 글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페루 잉카문명의 절정인 유적 마츄피추를 들 수 있다. 마츄피추는 안데스산맥 밀림 속 해발 2400m 바위산 꼭대기에 남아 있는 공중도시다. 그 산 꼭대기에 어떻게 큰 돌들을 옮겨다가 정교하고 튼튼한 건물과 생활시설을 만들었는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다. 1911년 미국의 역사학 교수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수풀에 묻혀 존재를 몰랐던 잃어버린 도시다. 잉카에는 말은 있었지만 문자가 없어 기록이 없고 역사가 없다. 그래서 마츄피추는 어떻게 세워진 것인지 왜 멸망했는지 추측만 무성한 수수께끼다.  글자가 어려워서 고대에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지만 그 후 발전하지 못한 나라도 있다. 에집트는 5천 년 전 지금의 능력과 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운 피라미드를 건설한 놀라운 문명과 문화를 가진 나라였다. 그러나 당시 사용하던 상형문자는 어려워 후손들에게 전승되지 못하고 죽은 글자가 되었다. 피라미드 역시 어떻게 지어졌는지 불가사의다. 룩소르에는 사막 지역의 바위산 지하에 수많은 왕릉이 있는데, 왕릉 복도의 벽면엔 상형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지만 이를 완전히 해독하는 사람은 드물다. 에집트는 아랍어를 쓴다.

  좋은 글자는 국력이 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 덕분에 국민들 대부분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 그 교육의 힘으로 세계가 경탄하는 높은 경제성장과 우수한 문화를 이루었다. 전자제품과 자동차뿐만 아니라 한류열풍을 타고 세계 속으로 우리 음악과 영화 같은 문화예술이 수출되고 퍼져간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 열풍이 아무리 거세어도 우리말, 우리글을 소중히 여기고 더욱 사랑해야 한다. 뿌리가 흔들리는 나무는 쓰러지고 만다.

  한글은 나를 존재하게 한다. 그리고 나를 이웃과 세상과 소통하고 함께 어울리게 한다. 세종대왕이 나와 한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 내 안의 세종-서울 문학인대회 기념문집』(문학의집서울)  2011>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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