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채우는 초록의 속삭임
연지민(문학 담당 기자)
불길 내어 당신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 길 내어 당신을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름 건너 가을 건너 겨울도 건너
타는 그리움 길로 고이 돌아오소서
햇빛보다 더 눈부신 순백의 아름다움 그대로
당신은 당신의 집에 다시 돌아와
끝내 못 볼지라도
초록빛 세상을 또다시 예비하리니
-‘떨어진 목련꽃잎을 태우며’ 중에서
자연을 노래한 차옥혜 시인의 9번째 시집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가 시문학사에서 출간됐다.
4부로 구성된 시집은 자연이 배경이다.
꽃이 피고 지고, 푸른 잎들을 거느리던 나무가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 자연의 법칙은 시인에게 경이로움을 선물하는 기쁨의 근원지가 되었다.
“도심 한가운데 살면서 고향이 그리워 자연에 눈을 돌리게 됐다”는 시인은 “농촌 마을에 자리를 잡고 서툰 농사일을 시작하면서 도망치고도 싶었지만 식물들에서 푸릇푸릇 새싹이 솟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을 보고 자연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황토밭에서 20년 넘게 식물 글자로 시를 써온 일은 고달프기도 하지만 내 삶에 참으로 유익하고 소중하고 귀한 체험”이라고 회고한다.
오랜 자연과의 교감은 시인에게 평화롭고 자유로운 자연 풍경과 우주를 이루고 있는 생명들을 초록의 언어로 거듭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김응교 문학평론가는 “시인은 식물을 단순한 대상으로 관조하지 않고 스스로 황토밭을 원고지에 옮겨놓았다”면서 “자연과 생산물과 작가는 완전히 하나로 연대하는 유기적 관계로 엮인다”며 시인의 삶터로 자연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충청타임즈 2010.3.25.자 수록>
차옥혜 시집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문덕수(시인ㆍ예술원 회원)
차옥혜(車玉惠,1984년 『한국문학』시인상 당선)의 제 9시집.
「새와 유리창」등 모두 72편을 수록.
생태주의를 선명하게 내세운 점에서, 이 시집은 특히 주목된다. 생명체의 ‘공생(共生)’은 생태학의 중심개념인데, 사람도 공생 시스템 속의 존재다. 생태시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생명체 속에서 인간존재를 어떻게 정착시키느냐에 있다. 지금까지의 인간중심사상, 자연지배욕 등의 포기. 이를테면 인간의 우월주의를 완전히 버리고, 존재자 전체(existentia)의 연관 속에서도 가장 낮은 한 존재자로 편입되어야 한다. 인간도 존재자 전체 속의 한 구성체라는 입장을 확립하고 이 입장에서 반공생(反共生), 혹은 환경파괴 현실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감행되어야 한다.
차옥혜의 이 시집이 보여준 생태주의는 인간존재를 존재자의 전체 연관 속에 정착시키는 문제를 체험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환경이나 생태문제를 신체적 레벨의 자각을 토대로 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 생태시의 풍요한 수확이다.
<시문학 2010년 4월호 194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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