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매력

김정주(소설가)

 

 시를 접하다 보면 시어에 놀랄 때가 많다. 좋은 선율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배트로 공을 탁 칠 때의 음 같기도 해서다.
 소설이 내러티브의 언어라면 시는 내러티브를 압축한 언어다. 시인의 내면은 압축된 언어를 통해 곡선으로, 때론 점선으로, 어느 땐 굵은 직선으로 흘러나온다. 시선집그 흔들림 속에 가득한 하늘엔 차옥혜 시인의 지향점과 내면이 곡선과 점선과 굵은 직선으로 담겨있다 

 

장마로 웃자란 개나리가지를 치려다

벌의 세계를 건드렸다.

벌은 순식간에 내 손등과 손가락에 독화살을 쏘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목숨을 건 장렬한 저항과 방어 뒤의 고요

벌의 몸뚱이가 가볍게 바람에 흔들린다.

 

나의 세계 한 쪽

새싹들이 굶어 죽고 죽어 무너져도

나에겐 아름다운 독이 없다.

계산하고 물러서고 침묵하고

움츠리고 미루고 구경하고 숨으며

내 집만 끌고 다니는

나는 달팽이다.

 

나는 소독약을 부어도 가라앉지 않는

화끈거리고 쑤시며 부운

독 오른 손으로

독 빠진 벌을

호박꽃 속에 넣어

꽃장을 치른다.

-아름다운 독전문 

 

 목숨을 건 장렬한 저항과 방어 뒤의 고요라니, 독 오른 손으로 독 빠진 벌을 호박꽃 속에 넣어 꽃장을 치른다, 곡선과 점선과 굵은 직선의 언어가 아름다운 독으로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독의 시어가 아닐 수 없다.

 웃는 모습으로 치면 차옥혜 시인은 소녀다. 그러나 앞섶을 조금 엿보면 소녀의 옷을 입은 어머니라고나 할까. 그동안 읽은 차옥혜 시인의 시는 조곤조곤 속삭이는 듯하나 종내는 할 말을 하고야 마는 근성이 있다. 그 점이 바로 차옥혜 시인만의 매력이다. 

 

마음도 없는 것이

손도 발도 없는 것이

녹으면 단지 한 옴큼 구정물인 것이

길을 환하게 한다.

(중략)

나는 누구의 눈사람인가.

-눈사람일부

 

쪼글쪼글한 마늘이

말라비틀어지는 마늘이

제 몸의 수분을 한 방울이라도 더 짜서

새싹을 조금이라도 더 밀어 올리려고

몸부림친다

 

마늘 싹이

허공을 깬다

-허공에서 싹 트다일부

 

  시허공에서 싹 트다에는 처마 끝에다 마늘을 매달아 놓은 장면이 나온다. 시인이 왜 시인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시킬링필드에서 허공을 깨는것은 생의 싹이 아니라 살인이다.

 

사람이 절망이다

 

시간이 가고 날이 가고 해가 가도

무성한 나뭇잎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장대비로도 씻기지 않는

바람으로도 날아가지 않는

겹겹 쌓인 해골에 서린 공포

 

부모 앞에서

야자나무 몸통 송곳처럼 솟은 마른 잎줄기에

아기 두 발을 잡고 죽을 때까지 쾅쾅 쳐서 던졌다는

아내를 세워 묶어놓고 남편의 행방을 말하라고

전기 드릴로 뒷머리를 후볐다는

캄보디아 킬링필드

 

세계 곳곳 킬링필드

 

사람이 절망이다

-킬링필드전문

 

  시킬링필드야말로 우리가 곧 킬링필드라는 고발적 언어이자 자성적 언어이기도 하다. 그 언어는 시눈이 오는 날엔으로 넘어간다. 거의 마지막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모든 아름다움 중에 으뜸은

생명이니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싸움 아닌 것이 있느냐

-눈이 오는 날엔일부

 

  차옥혜 시인은 작은 것은 작게, 큰 것은 크게, 나름의 가치를 존중한다. 다시 말해 크던 작던 존재 자체는 소중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시인의 마음이 애틋하게 내 안을 채운다.
  차옥혜 시인의 시선집 그 흔들림 속에 가득한 하늘은 그동안 출간했던 시집 열 권 중에서 뽑아낸 시를 묶어낸 시집이다. 2015419일에 내가 받은 시집이기도 하다.
  차옥혜 선생님은 내게 시집을 보내시면서 육필로 쓴 편지도 함께 넣어주셨다. 건강도 부실하신데 후배를 생각해주시는 마음이 너무도 자상하고 따뜻해 울컥해졌다. 원고지에 쓴 편지를 읽고 있자니, 선생님과의 첫 인연이 눈에 어른거린다.

 

<집필자 홈페이지 2015.5.7. 수록>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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