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벗으니 다 보이는구나

                                                           차옥혜

 

모두 훨훨 벗어버려

다 보이는 겨울 숲이여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낱낱의 작고 가냘픈 어린 나무들이

드러나고

땅에 엎딘 마른 풀들도

환하구나

큰 나무들은

아득한 어린 나무들 앞에서

겸손하구나

이제 보인다

가려 보이지 않던

앞마을과 뒷마을

먼 산과 강과 지평선

그리고 길들이

환히 보이는구나

다 보이니

눈보라에 크고 작은 나무들

하나로 당당하구나

길 앞에서 모두가 한 목숨으로 장엄하고 아름답구나

모두 벗어

한 몸 된 겨울 숲이여

모두 벗어

내일인 겨울 숲이여

 

<심상  198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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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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