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마음으로 부르는 생명의 진가
윤정구(시인)
『씨앗의 노래』는 차옥혜 시인이 ‘애틋한 마음으로, 묶은 열두 번째 시집이다. 시적 형상화에 있어 애써 기교를 피하면서 담담하게 펼쳐놓은 시편들이 흡사 어릴 적 들꽃 아름다운 고향길을 산책하는 것처럼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삼월에 사다 심은
대추나무 묘목 여섯 그루
사월 중순에 새싹 돋았는데
그 중 한 그루는
지하수 퍼주어도 잠만 잔다
오월이 가고 유월이 가도
다른 묘목들은 꽃이 피는데
기척이 없다
긴 가뭄 끝에 삼일 간 장마 진 후
죽은 줄 안 대추 묘목에서 솟는 새순!
비가 살린 대추나무!
칠월 한여름에야 돋은 새싹!
반갑다 고맙다 신기하다
비야 감사하다 신비하다
목마른 초목들에 단비야 내려라
그동안 너무 일찍 포기한
목숨은 없었나
-「비가 살리는 초목」전문
「비가 살리는 초목」이란 제목의 대추나무 이야기도 솔직한 직설화법의 단순한 구조의 시이지만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옛이야기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신의 창조물 중에는 어디에도 늦자라는 늦둥이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에 대한 안타까운 관심은 모성 본능의 하나일 것이지만, 삼월에 사다 심은 묘목들은 대개 사월 중순이 되자 잎이 피어나고, 오월 지나 유월이 되자 꽃을 피우는데, 다른 것들과 달리 유독 기척이 없는 대추나무 한 구루는 안타까움과 기다림을 넘어, 죽음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리라. 그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한 의지의 시험인지도 모른다. 상식을 뛰어넘는, 기적이 필요한 순간일까?
가뭄 끝에 장마가 와서 삼 일간 계속 비를 맞은 후 죽은 줄만 알았던 그 대추나무에서 새순이 솟는 것으로 시는 반전을 이룬다. 칠월 한여름에야 돋는 새싹 앞에서 시인은 자연에 대한 경이와 생명의 신비에 감동하고, 감사하며, 힘껏 “목마른 초목들에 단비야 내려라”로 노래한다. 그리곤 “그동안 너무 일찍 포기한 목숨은 없었는지” 독자와 함께 뒤돌아보는 것으로 시를 깔끔하게 마무리함으로써 기승전결의 모범 답안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오래 전에 보았던 연극 『죽은 나무 꽃피우기』와 해마다 늦게야 반짝이는 잎새들을 내보이던 내 집 앞의 대추나무가 생각났다. 가까운 거리에 상관물을 두고도 나는 아직 대추나무에 대한 시는 써보지 못하였다. 내게 대추나무란 의례히 늦게 봄을 피우는 나무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감성 어린 애정을 가지고 사물을 관찰하고, 시로 엮어내는 이가 진정한 시인이 아닌가 싶어 새삼 부끄러워진다. 시집 열두 권은 그러한 열정을 꾸준히 실천한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금자탑일 것이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으면, 죽은 나무에서도 꽃을 피우는 기적이 주어지는 것이다.
<문학과 창작, 2019년 겨울호 , 좋은책 좋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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