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가는 길은 따뜻하다
유수화(시인)
가을빛을 품은 들녘이
말없이 단풍 들어 곱다
늙고 볼품없는 나도
단풍 들었는가
들녘이 새끼들을 떠나보내고
고요히 단풍 들어 반짝인다
나도 자식들을 보내고
단풍 들었는가
단풍든 목숨의 빛이
찬란하고 아프다
-「단풍든 목숨의 빛」전문
차옥혜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 『숲 거울』은 제 1부 나무와 풀은 사랑만으로 세계를 통일했다, 제 2부 길에 나를 두고 떠나고, 제 3부 자유로 가는 길은 왜 그리 먼가, 제 4부 그립고 그리운 말씀, 제 5부 풍경과 나로 나뉘어 있다.
제시된 시는 시집 제2부에 수록된 작품이다.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어는 때부터인가 그 숲이 오히려 나를 기르기 시작했다. 숲은 나에게 때로는 어머니, 스승, 친구, 애인, 자식이 되어주기도 하고 나와 세상을 환히 비추어주기도 한다.”고 자술한다.
시집『숲 거울』은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자애’가 있는 사상적 버팀목인 기독교적 사유를 정서적으로 승화시켰다. 종교가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희망적 의지가 되듯이 시인 역시 종교적 사유가 시인 자신을 키워 온 ‘산’이다.
시인은 ‘산’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숲’의 이야기를 일인칭 어법으로 소통한다. 일인칭 어법은 시인 내면의 온도변화를 독자에게 진솔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치이다. 제시된 시에서 ‘들녁’은 숲의 길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숲의 길에서 만들어진 들녘은 “말없이 단풍들어”간다. 사계의 순환적 통과의례의 과정을 받아들이고 있는 시인의 눈은 “곱다”라고 독백한다. 시간을 순응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수없는 이야기들의 고비가 다 삭여진 토로이다. 치기어린 봄과 혈기의 사투인 여름에서 빚어진 좌절과 성취의 이야기를 내려놓고서야 말할 수 있는 ‘곱다’라는 진술이다.
마지막 연에서 독자의 정서를 일순간 흔들고 있다. 독자는 ‘단풍든 목숨의 빛이/ 찬란하고 아프다’라고 토로하는 시인의 울림을 듣는다. 시인이 톡자와 소통하는 시적 기법에 무릎을 탁 친다. 시선집을 제외한 열한번쩨 시집을 상재한 시인의 저력이 돋보이는 시작법이다. 다양한 시적 장치를 적절하게 배합하여 독자와 소통하는 작업을 존경하며 다시 한 번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
<문학과 창작 2016년 가을호 291〜292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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