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를 벗어난 소통(疏通)의 시학

김윤환(시인)

  시창작에 비추어 새겨들을 만한 글귀를 탈무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글자 한 자의 빠춤이나 더함이 전 세계의 파멸을 의미 할 수 있다는 이 격언은 동서고금의 시인이 어떤 자리에 위치하는지 서늘하게 알려주고 있다. 시인은 언어예술의 주체적 생산자이자 1차 소비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인의 언어-시어-는 곧 세계(우주)의 형상화에 있어 첨삭의 심판자이자 구도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한 시()생산의 범도(範道)를 깨닫게 해주는 시를 만나는 것은 도()를 만나는 것만큼 설레고 기쁘다. 

  1. 인간의 탈()자연화를 경고하는 생태시학

       차옥혜 시집 숲 거울

   최근 지구 생태계 파괴의 심각한 문제를 놓고 온 세계의 학계, 종교계, 정치계가 심각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중심의 자본이 자연생태계를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인간의 야만성과 이기심이 빚어낸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상잔(相殘)의 비극을 예언하며 뭇 생명들에 대한 경외와 상생을 회복코자 노래하는 차옥혜시인의 시집 숲 거울은 생태시학의 범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하느님이 돋보기를 쓰고


우리들 콩이 잠들어 있는 자루에 손을 넣어

우리를 조금씩 집어 손바닥에 놓고

크고 통통하고 윤기 나고 흠 없는

씨앗을 고르느라 바쁘다

봄이 왔나 보다

작고 벌레 먹고 깎이고 으깨지고 찌그러진

콩들은 바짝 긴장한다

나는 선택받고 싶다

새싹으로 움터 줄기 뻗고 잎을 드리워

꽃 피워 주렁주렁 열매를 맺어

거듭거듭 살고 싶다

지난해 까치, 고라니, 토끼의 입질을

장마, 가뭄, 병충해를 용하게 피하고

온전한 콩으로 익어 으스대고 자만했는데

벌레가 그만 내 가슴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우리 하느님이 마침내 나와 친구들을 집는다

뻔한데 나는 어쩌자고 떨며 애걸복걸하나

 

기회를 주소서

- 선택받고 싶다전부 

 

  존속(存續)의 대상으로 선택받지 못하고 소외된 것은 비단 인간만이 아니다, 작은 식물들까지도 신이 아닌 피조물 인간들에 의해 심판당하고 변질되고 파괴되어가는 뭇 생명들이 실제 창조주인 신에게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는 아우성을 시인이 대신 절박하게 기도를 하고 있다
  1973년 노르웨이의 철학자 나스(Arne Næss)에 의해 처음 주창한 생태근본주의에 의하면 자연은 하나의 통합된 것이며 인간도 자연의 일부에 속한다. 또한 인간의 내부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본성은 본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자연요소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생태계의 풍부성과 다양성을 해칠 권리가 없다. 즉 생태근본주의의 핵심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생물중심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창조주의 섭리대로 적절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을 그 가치로 삼고 있다고 할 때 이 시는 존속의 기회를 가짐으로 창조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시적 화자의 다급한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들이 울고, 숲이 울고, 꽃들만 남아 피고 지는 들과 숲의 노래(우는 들, 우는 숲)는 인간이 쓰고 버린 자연의 상처 난 현장이 여기저기 생기고 있음을 시인은 발견하고 있다.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며

문명과 문화를 즐기면서

만들어낸 이산화탄소가

북극의 빙하를 녹여 생긴

기후변화 때문이라 합니다

 

제발 당신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를 희생시키지 마세요

 

내 자식들을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겨울이 있는 문명국 어머니들에게일부

 

  시인이 표현한 대로 지구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태평양 적도 산호섬 나라 키리바시에 사는 다섯 아이의 엄마의 울부짖음은 결국 겨울공화국에서 따뜻한 문명을 누리는 무지하고 이기적인 문명인간들에 의해 자신의 터전인 섬이 물에 잠기고 있다는 대한 절박한 현실을 알리는 경구이자 애끓는 모성의 노래이다. 지금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지구 공동체의 문제를 시인은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지구 환경위기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고하는 새로운 역사적 요소로 보는 사회생태주의자 부킨(Murray Bookchin)"무계급 관계, 분산된 민주적 공동체, 태양열이나 유기농법과 같은 자연생태 기술 등에 근거한 생태적 사회로 변화하기 위해 평등주의적 사회생태 환경운동으로 탐욕적 자본주의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문학도 함께 반응해야한다는 것을 실천적 시학으로 보여주는 시편이다.  

 받쳐주고 덮어주며

쓰레기 더미가 피운

풀꽃

 

쓰레기 더미에서 맑고 환한 얼굴로

당당하게 노래하는

풀꽃

 

버려진 것들이

썩은 것들이

아름답게 환생한

풀꽃

 

쓰레기 더미를 끌고

잎을 파닥이며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른

풀꽃

- 쓰레기 더미에 핀 풀꽃전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버린 온갖 쓰레기더미 위에 여전히 풀꽃은 핀다. 이것이 자연의 위대함이며 희망이기도 하다. 시인은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지구의 오염과 파괴 속에서도 자신을 버린 인간들에게 자연은 여전히 푸른 지구를 증명하고자 한다.
  인간중심의 자연파괴에 대한 피조자연의 존속의지는 「애미 은행나무의 자부심에도 잘 나타나 있다 

 

새끼들을 지키기 위하여

무슨 짓을 못 하랴

만 개의 푸른 입으로

세상 먼지 다 삼켜

섬세한 천연 필터 폐로 걸러

맑고 신선한 공기 뿜어 낸 허공에

새끼마다 몸에 꼭 맞는 집을 지어주고

그 집을 독으로 에워싸

어떤 짐승도 벌레도

내 새끼들을 넘보지 못한다

내 새끼들은

청정하고 평화로운 집에서

한 점 얼룩 없는

맑고 고운 초록 눈 뜨고

천년 미래를 꿈꾼다

 

알 수 없어라

기진맥진하다가도

자식들만 보면

푸릇푸릇 솟구치는 내 핏줄

- 에미 은행나무의 자부심전부

 

  자연이 지닌 모성적 돌봄 근성은 인간의 최소한의 상생적 의지만 실천된다면 얼마든지 복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애미 은행나무의 자부심에서 보여주고 있다. 거창한 구호나 이념으로서 투쟁이 아니라, 우리의 모성을 회복하듯이 자연의 모성을 존중하고 상생하는 거울로 삼아야 함을, 은행나무의 천년 미래를 보며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시인은 실제로 수도권 변방에서 텃밭을 가꾸며 자연과 대화하며 살고 있다. 들과 밭과 숲을 보며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평화로우며 든든한지 몸으로, 문학으로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마침내 숲 거울을 통해 숲에서 숲으로 초원에서 초원으로를 노래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이 상생하는 평화의 세계를 꿈꾸며 이렇게 노래하는 것이다. 

 

천년 숲 속을 걷고 걸으니

나는 천년 나무

광활한 초원을 바라보고 바라보니

나는 광활한 초원

 

숲과 초원이 기르는 아름다운

사람, 마을, 도시

사람이 가꾸는 아름다운

, 초원, 꽃밭

 

생명과 생명이 사랑으로 껴안는 곳

맑고 깨끗한 하늘과 땅이 눈 뜨는 곳

사람이 꽃이고 꽃이 사람인 곳

, 초원, 꽃의 나라

 

숲과 사람과 초원에

고이고 고이는 평화와 꿈

흐르고 흐르는 생명의 강

- 숲에서 숲으로 초원에서 초원으로전부

 

                                                                                  <두레문학 202016 하반기 수록>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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