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도 시를 썼다 

                                                                                차옥혜

 

  나는 1984년 11월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늦깎이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시는, 문학은 어린 시절부터 내 삶이었고 본능이 아니었을까.

  내 문학의 피인 넋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귀를 기울이고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존중하며, 이웃과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모든 사람들이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늘 기도하며 실천하던 기독교인이고 이상주의자였던 부모님에게서 받았다.

  내 문학의 뼈인 모국어는, 부모님과 교회 선생님들의 성경말씀과 동화와 외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서 생겼고, 즐겨 읽은 소설책들과 명상 집들과 시집에서 자랐다.

  그리고 내 문학의 살인 서정은, 고향 전주의 산과 들과 냇물과 하늘과 외할머니가 살던 호남평야와 동진강과, 동물과 화초를 사랑하며 즐겨 기르던 어머니에게서 움텄으리라.

  나는 글을 배우면서부터 감동을 글로 쓰는 버릇이 생겼다. 여덟 살 때 친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나는 초상마당을 벗어나 뒷산에서 슬픔을 글로 쓰고 있었다.

  초등학교 3 학년 때 글짓기 숙제로 써간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가 어른이 써준 것이 아니냐고 선생님이 야단을 쳐 억울하여 엉엉 울기도 했다. 언제나 국어시간이 즐거웠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문예반 반장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는 내 글이 전라북도 도내와 전국 글짓기 대회에서 여러 번 장원도 하고 우수 작으로 뽑혔다. 한편 나는 중고등학교에서 줄곧 학급 반장과 학생회장과 적십자 단장을 하며, 전라북도 웅변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일등을 하여, 선생님들은 나보고 훌륭한 정치가가 되라고 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문학의 향기에 깊이 빠져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헤르만 헷세의 내면적이고 사색적인 작품들의 영향과, 아버지가 주관하던 기독학생을 중심으로 한 정신운동체인 사마리탄 참여로, 참된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섬과 농촌과 고아원 등지에서 어둡고 아픈 세상살이를 응시하기도 하고, 남들이 한참 입시로 바쁜 고 삼에 20일간 절에 들어가 절 주변의 숲 속에서 명상을 하기도 했다. 전주천 다리에 걸려 있는 하늘과 구름과 노을과 별들과 바람과 숲이, 인간의 참 모습을, 세계와 우주의 비밀을, 진리의 길을 알려준다며 나를 끌고 다녔다.

  아름다운 자아를 찾고 싶어 고뇌하던 내 정신의 고향을 지나, 나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녔고 직장인이 되기도 하였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간간이 독서를 하며 글을 썼지만 진지하지 못했다.

  1982년 3월 오랫동안 생활에 매몰되었던 나에게 지진이 일어났다.

  남편이 독일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연구생활을 하러 가족과 함께 떠나기 위하여 이사 짐을 싸던 날 밤, 프로판가스통이 폭발했다. 남편은 불을 뿜는 가스통을 끌고 나와 큰 화재를 막았지만 전신화상을 입었다, 남편의 그 처참한 모습과 순간 붉게 타던 하늘은 잠자던 나를 깨뜨렸다. 나는 중환자 실 앞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 달 후, 남편이 대충 나아, 우리 가족은 독일로 갔고, 나는 그 곳에서 뜻밖의 중병으로 수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깨자 불편한 몸으로도 글을 썼다.

  아마도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기도이며, 죽음과 고통을 극복하는 힘이며, 희망의 미래로 통하는 문인 것 같다. 나는 꿈속에서도 시를 썼다.

  나는 시인이 되어 세상과 교감하고 싶어졌다. 시를 통하여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로 나를 찾고 나를 세우고 나아가서 이웃과 세계와 우주를 사랑하고 싶었다. 시의 아름다움을 향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아니 시로 삶의 고통과 슬픔과 절망도 울어 위로와 안식과 평화의 길을 혹은 진실의 길을 찾고 싶었다.

  1984년 독일에서 귀국하여 문예진흥원 문학강좌에 참석하고, 문예진흥원 주최 전국 주부 백일장에 나가 내 시가 우수 작으로 뽑혔다. 신문사 문예강좌에서 김광림 선생님과 이근배 선생님의 시창작 강의도 들어보았다. 그리고 열심히 많은 시집을 읽었다.

  그 해 고은 선생님 추천을 받아 한국문학 11월 호로 등단했다.

  내 시가 당선된 책을 들고 제일 먼저 부모님에게 달려갔다. 한 세상을 손에 쥔 듯이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시의 길은 만만하지 않았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시는 금시 내 앞에서 사라진다.

  좋은 시는, 세계와 우주를 향해 마음의 창을 항상 열어두고 사랑으로 만물을 껴안고 호흡하며, 열정을 가지고 온 몸으로 수도자처럼 정진할 때만 나에게 얼굴을 잠시 보여준다.

  등단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시는 예술은 평생 끊임없는 열정과 보이지 않는 등단을 거듭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나의 등단 이야기(한국여성문학인회)  2002년>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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