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차옥혜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10 살 난 소년이 대학생 청년이 되기까지 정신 성장기지만, 한편 내가 누구인가를 성찰하는 철학적이고 깊고 진지한 명상집 같아서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 읽어도 향기로운 책이다.

  내가 처음 『데미안』을 손에 쥔 때는 고등학교 일학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을 얼마나 이해했을까마는 학교의 모범생이었던 나는, 주인공 싱글레어처럼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이 학교 공부보다 더 가치 있는 일로 여겨져, 한없이 숲을 헤매고, 길을 걷고,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고, 섬 마을과 농촌과 고아원을 찾아가기도 하고, 교회의 십자가 밑에서 기도를 하고, 산사에서 20일 동안 명상을 하기도 했다. 숲의 바람이나 샘물이나 새벽 종소리 같은 은은하고 깊고 사색적인 헤세의 글이 얼마나 한 소녀를 설레게 했던가. 나는 내 알껍질을 깨고 비상하고 싶어 얼마나 많이 내 어린 영혼의 날개를 파닥였던가.

  『데미안』! 인간 정신의 빛이 그토록 신비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 세상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해석하는 눈을 주다니!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두 달 만에 써서 발표한 1917년은 세계 일차대전이 한창인 때였다. 그때 독일인인 그는, 스위스에서 “전쟁포로 구호사업”에 헌신하면서, 증오보다는 사랑이, 분노보다는 이해가, 전쟁보다는 평화가 고귀하며 국수주의와 야만주의는 배격되고 사상과 내적 자유와 지성적 양심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초국가적 세계관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글들을 발표했다. 독일 언론들은 그를 배신자라고 하며 적대적 반응을 보였다. 거기다 결혼생활의 파경과 막내아들의 중병과 아버지의 죽음까지 겹쳐 심한 우울증과 신경쇠약 증세까지 나타났다. 헤세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으며 정신분석적 대화와 융과 프로이드의 저술을 독자적으로 연구하며 탈출구를 모색했다. 이것이 『데미안』이다. 이 소설은 그의 최대 생의 위기가 만들어낸 위대한 예술이다. 이 책은 전쟁에 참여했던 독일 청년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줬으며, 폭발적인 인기로 독일어권에서만 100만부 이상이 팔렸고 순식간에 세계로 번역되어 나갔다.

  주인공 싱글레어는 자기탐구의 길을 떠난다. 그 길의 안내자가 데미안이다.

  헤세는 “내가 보호해야 했던 것은 기계화와 전쟁과 국가와 대중적인 이상들을 통해 위협받고 있는 ‘사적이고’ ‘개인주의적인’생활이었다.”고 했다. 헤세는 소설 서문의 맨 앞에 소설 본문 중에서 주인공 싱글레어가 신음처럼 말했던 “나는 정말 나 자신으로부터 저절로 우러나오는 인생을 살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웠던가?”라는 문장을 내세운다. 이것이, 헤세가 소설에서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핵심이며, 모든 사람들을 울리는 글이다.

  싱글레어가 만난 사람들 크로머, 데미안,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는 싱글레어 의 분신들이다. 그의 길잡이 데미안은 그의 참 자아이고, 아부락사스 신과 에바 부인은 그가 도달해 이룬 정신의 이상과 통합이며 데미안의 또 다른 이름이다. 데미안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부락사스라고 한다.”고 싱글레어에게 편지를 썼다.

  데미안은 “우리가 신봉하는 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자의로 갈라놓은 세계의 절반만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그 것은 공식적이고, 허용되고 있는”밝은 세계‘였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 세계를 신봉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시에 악미기도 한 하나의 신을 갖거나, 혹은 신에 대한 봉사와 함께 악마에게도 봉사를 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부락사스는 신인 동시에 악마였던 바로 그 신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헤세는 『데미안』을 통하여, 세계와 인간에게 엄연히 존재하는 빛과 어둠, 신과 악마, 양면성을 인정하고, 사고와 행동의 혁명을 통하여 정신의 통합으로 내적 자기 창조를 이루고 ,참된 자아인 인간의 본성으로 새로운 미래를 발견하려 했다.

 

<문학의 집ㆍ서울  2006년 3월호>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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