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시평

한만수

 

신인은 아니지만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시인의 것 중에서 차옥혜의 세상엔 노아의 방주가 없다(함께 가는 작가,7. 전문 인용) 같은 작품들이 눈에 띈다. 

 

아파트 7층이면/아무리 장대비 쏟아져도/걱정 없을 것이라고 안심했는데/한밤중 거실 베란다 빗물 오수관에서/물이 쿡쿡 솟아오른다/빗자루와 플라스틱 바가지가 둥둥 떠다닌다/창 밖으로 물을 계속 퍼내도/괴물 같은 물이 자꾸만 불어난다/한밤중 7층 아파트가 침몰한다/내가 빠진다 가족들이 첨벙거린다/다급하게 사방을 휘돌러보니/검은 얼굴로 웃고 있는 웅덩이뿐이다 

한밤중 10여 미터 상공에서 침수되는 아파트라. 그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우리 문명이 쌓아올린 바벨탑의 붕괴 조짐을 시사해주는 좋은 보기이다. 보다 현실적인 보기라면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다. 거대한 도회의 문명의 이기들은 그것이 인간의 제어를 벗어나는 순간 거대한 흉기로 탈바꿈한다. 누구 말대로 우리는 문명이라는 화산 위에서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지진 우려가 큰 곳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놓고도 무사태평이라는 섬뜩한 뉴스를 마침 들으면서 이 작품은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비록 결귀에 힘이 모자라고 생각이 더 나아갈 수도 있을 텐데 싶어 아쉽지만, 도회적 삶의 부화함을 적실하게 찍어내 보여주는 경기관총 같은 가편이다.

 

<시와 사람 1997년 가을호 245-246쪽 수록>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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