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차옥혜
바람이 부네
밟혀 일어서지 못하는 풀들
일으키려
바람이 부네
두더지가 갉아먹은 뿌리
그 상처 어루만져
잔뿌리 키워주려
바람이 부네
가뭄에 목 타는 잎새
싱싱한 푸른 잎으로
다시 살라고
바람이 부네
이 벌판 가녀린 풀잎으로
흔들리는 것이 서러워
흐느끼는 풀에게
네가 바로 하늘이다
너의 흐느낌은
어둠을 쫓는 노래이고
너의 흔들림은 빛을 몰아오는 춤이다
라고 속삭이며
바람이 부네
어제 죽고 오늘 죽은 풀들
내일 다시 태어나고
눈보라에 떠난 풀들
봄날에 다시 돌아오는
보라
너희는 죽지 않는 생명
영원히 이 벌판을 지키리니
나 바람이 너 풀이고
너 풀이
나 바람이다
는 것 보여주려
바람이 부네
풀벌레와
두더지도
이빨을 잠재우고
한 점 바람으로
풀잎과 함께
바람길로 오라고
바람이 부네
하늘을 열고 열어
눈부신 새 빛을
풀들의 가슴에 안기려고
바람이 부네
바람이 부네
<서사시 『바람 바람꽃』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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