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 -편지 1

시 -1 2006. 5. 5. 14:50

  

 고목  

             -편지 1

  

                                                                차옥혜

 

껍질만 남아 있던 사랑마저도 떠나고

뒤틀린 등과 저승꽃 핀 얼굴과

아무리 가리려 해도 다 드러나는

훵하게 뚫린 못 생긴 가슴만 남았습니다.

젊은 날 아름답던 그림자를 두고 온

그 언덕과 해변과 거리를

되새김질할 위장도 헐어버렸습니다.

온몸이 얼음덩이입니다.

나는 무엇을 보며 살아왔습니까.

이제 의지할 것은 내게 걷어채고 짓밟히면서도

내 불거진 뿌리를 꼭 잡고 버틴

당신뿐입니다.

그동안 내가 기댄 것은

바람벽이 아니라

당신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버리고

나마저 나를 버리고서야

나는 돌아갑니다

당신에게

나는 껴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하면서 무엇인

침묵이면서 소리인

죽음인 듯하면서 생명이고 삶인

당신을

 

<시집 『흙바람 속으로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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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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