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보석함
조병옥(작곡가, 수필가)
노래가 끝날 때 나는 어제 우편으로 받은 차옥혜 씨의 시 한 수를 낭송했다.
(… 중략 …)
시 속에 녹아 나오는 남다른 사회의식도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부러워했던 것은 그녀만이 가진 색조 높은 ‘언어의 보석함,(독일어로 wortschatz)이다.
누가 우리를 미치게 했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머니 가슴팍에 불비 쏟았으리
미치지 안고서야
형제끼리 죽창 휘둘렀으리
풀도 하늘도 붉던 그날
우리들 혼은 재로 흩날리고
여름은 갔지
반신불수 어머니
타버린 꿈 못 잊어
남은 목숨에 불을 질러도
눈밭의 보리는 오월을 기다리다 지쳤다네
(중략)
백두에서 한라까지 오가며
산비탈에 벌판에
꽃씨 뿌리고 싶은
우리는 바람이네
물이 가른다고 갈라지던가
바람이 자른다고 잘라지던가
누가 우리를 미치게 하는가
외지에서의 오랜 삶을 접고 제나라의 자연, 역사적인 여건과 상황 속에서 새로 태어나 제 나라 흙냄새 맡으며 글 쓰고 있는 차옥혜 씨가 나는 부러웠다.
고향을 떠나던 날부터 가슴에 방황의 씨앗을 심은 여기 이 망명자들, 그들의 노래 속엔 아직 고향의 삶이 살아 있고, 무릎 치는 손바닥 바람결에 그들의 춤사위가 튕겨지고, 곡성 같은 창(唱) 속에 아쟁이 애끓게 울고 있건만, 여기는 아직도 시베리아, 바위처럼 두터운 얼음장 밑에서 봄은 아직 기척도 없었다.
<『라인강변에 꽃상여 가네』 2006년 163-165쪽 수록>
'시에 대한 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봉」 - 송기환 (0) | 2006.03.22 |
---|---|
「하루가 천년이고 천년이 하루인 나라」 - 박이도 (0) | 2006.03.21 |
「우리 어머니는 시인」 - 정순진 (0) | 2006.03.19 |
「오아시스」 외 1편 - 정신재 (0) | 2006.03.13 |
「쓰러진 나무가 홀씨를 살려」 - 김석환 (0) | 2006.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