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호밀
차옥혜
봄이다
샛바람 분다
살았다 견뎌내었다 이겼다
가을에 눈떠 멋모르고 우쭐대다
폭설에 덮혀 얼음에 갇혀 죽음과 싸우며
혹독한 겨울을 통과한 자만이 느끼는
환희의 깊이와 높이를
봄날에 싹터 꽃샘추위에 벌벌 떠는 새순이
매화, 산수유, 수선화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겨우내 떨며 움츠리고 얼면서도
끝내 푸른빛 잃지 않은 작은 몸이
신기하고 대견하며 자랑스러워
제 이름 부르며 소리 없이 운다
신나고 기쁘고 기뻐서
제 어여쁨 소리죽여 노래한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좋아
봄날의 특권 아니냐
스스로 다독이며 힘 모은다
봄볕이 보약이다
겨우내 못 자란 키가
으쓱 솟는다
하늘까지 가보자
꿈꾸자 희망 품자
주변을 둘러보니 호밀 친구들의
상기된 눈빛 부푼 가슴
겨울을 함께 이긴 호밀들이
봄바람에 남풍에
샛바람에 꽃바람에
모두 함께 춤춘다
봄이다 봄날이다
호밀 만세
<산림문학, 202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