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씨앗은 봄날이 두렵다

                                                                차옥혜

 

민들레 씨앗은 봄날
솜털 같은 갓털을 쓰고
바람에 실려 허공을 떠돌다
길에 떨어져 구르고 구르다
사람 발길, 자동차 바퀴에 짓밟히고
길섶 풀 더미에 엉겨 붙거나
하수도, 시궁창, 냇물에 빠진다

민들레 씨앗 하나 어쩌다
“좋은 곳에 가서 자리 잡고 잘 살아라”
애타며 손 흔들던 엄마에게 돌아왔다

“에그 내게로 다시 오면 죽어”
“엄마 내 뜻이 아니어요
세상은 만원, 뿌리 내릴 땅이 안 보여요“
“그래도 바람 불면 다시 날아야 돼”
“곳곳에 민들레 씨앗들의 시체가 쌓여 있어요”
“그래도 자리 잡고 싹튼 민들레 씨앗도 있잖아
자, 바람이 분다 어서 다시 날아 날아가”

이 민들레 씨앗은 갓털을 팔락이며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엄마의 얼굴에 눈물을 뿌리며
바람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아버린다

                       

                                                                 < 2016년 5월 3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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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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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화살나무에 빠져

                                                         차옥혜

가을이 깊다
화살나무가 활활 불타며
우주를 삼키고 있다
눈부시다 황홀하다

가을 깊은 나는 어느덧
불붙은 화살나무에 빠졌으나
불붙지 못하고 여전히
말라비틀어진 호박 줄기다

겨울이 오기 전 나도
한순간만이라도
화들짝 불타고 싶어라

겨울의 입구에서조차
불타는 화살나무이던
그 사람
찬바람에 맞서가며
허공에 불씨 날려
영원히 세상 울리는
시를 새기던 그 사람

불타는 화살나무야
가을 깊은 나에게
불 좀 붙여다오

 

                                                       <한국현대시, 20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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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진 낮달과 낫과 푸른 산등성이

                                                                    권 달 웅

아득히 먼 산등성이에
낮달이 걸렸다

벗어놓은 지게에
낫이 꽂혔다

희미한 낮달도 닳은 낫도
등이 휘어졌다

푸른 산등성이도 아버지도
등이 휘어졌다

낫은 창백하고
낮달은 애달프다

아버지는 고달프고
산등성이는 가파르다

모두 등이 휘어지도록
무거운 짐을 졌다

가도가도 멀고 험준한
생의 비탈길

 

*** 눈물이 핑 돈다. 심금을 울리며 위로하는 시의 힘!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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