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시 -5 2025. 8. 30. 09:49

  매미

                                                 차옥혜

가을이 되고서야 하늘을 본다
날마다 팔 다리에서 온몸으로
마비증세가 퍼져간다.
아무리 노래를 해도 울림이 없다.
여름날 몸을 떨던 나뭇잎이
어디론가 사라져간다.
어찌하여 들풀들은 무릎 끓기 시작할까
왜 나무는 끝내 입을 다물고 있을까
여름내 노래 불러준 모든 것이
왜 나를 거부하고 있을까
이 삭막한 대지를 적시는 비는 무엇인가
이제야 끝없는 물음에
하늘만 자꾸 넓어져 간다.

                                                  <시집 『깊고 먼 그 이름』 1986>

 

출처: https://barampoet.net/46 [차옥혜 시인의 블로그:티스토리]

'시 -5'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재가 불타고 있는 것은  (0) 2025.08.19
  (0) 2025.04.20
연뿌리 4  (0) 2025.03.22
연뿌리 3  (0) 2025.03.07
연뿌리 2  (0) 2025.02.21
Posted by 차옥혜
,

하늘재가 불타고 있는 것은

                                                   차옥혜

노령산맥 줄기 병풍 같은 산 중턱
하늘재가 소리 없이 안으로 불타고 있는 것은
가을 탓이 아니었다.
지금은 지도에 없는 거의 사라진 마을이지만
인심 좋아 물이 좋아
120여 가구 모여 살던 마을이다.
하루아침에 생각 하나로
이웃끼리 형제끼리 적이 되던 미친 시절
사람이 반가워서
사람이 가여워서
밥 주고 재워준 게 죄가 되어
집은 불타고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과녁이 되었다.
그래도 20여 가구는 남았는데
과부들은 두세 번씩 시집가고
한 사람 두 사람 바람 따라 길 따라 흩어져
지금은 네 집만 남았다.
그중 두 집은 빈집이고
두 집은 산닭을 길러
내장사나 담양호로 가는 관광객이나
운치 좋은 곳에서 식사하려는 도시인에게
도리탕이나 백숙을 팔고 있다.
그나마 그들도 아이들 때문에
도시로 나갈 꿈을 꾸고 있다.
몇십 년 꼭꼭 숨겼던 이야기
어쩌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조금 들려주는데
통일이 되면 이 나라 능선마다 계곡마다
어떤 십자가들 튀어나올까.
하늘재가 소리 없이 안으로 불타고 있는 것은
가을 탓이 아니었다.

                                   <기독교사상,1993년 10월호>

'시 -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미  (0) 2025.08.30
  (0) 2025.04.20
연뿌리 4  (0) 2025.03.22
연뿌리 3  (0) 2025.03.07
연뿌리 2  (0) 2025.02.21
Posted by 차옥혜
,

시 -5 2025. 4. 20. 19:34

                                              차옥혜

1854년 초 시애틀 지역
수쿼미시 부족 추장이
원주민 땅을 수용하려는
미국 연방정부 협상단에게

“어떻게 하늘을 사고 팔 수 있으며
대지의 온기나 영양의 신속함을
사고 팔 수 있다는 말인가…
공기의 신선함과 물의 반짝임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마지막 원주민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에 대한 기억이 백인들 사이에서
신화가 될 때도
이곳 바닷가는
한때 이곳에 살았고
아름다운 이 땅을 여전히 사랑하는
영혼들이 모여들 것이다”

라고 했다는 말이
자꾸만 나를 치며 아프게 한다

 

                                                                        (한국현대시, 2019하반기호)

'시 -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미  (0) 2025.08.30
하늘재가 불타고 있는 것은  (0) 2025.08.19
연뿌리 4  (0) 2025.03.22
연뿌리 3  (0) 2025.03.07
연뿌리 2  (0) 2025.02.21
Posted by 차옥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