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뿌리 4

시 -5 2025. 3. 22. 15:31

연뿌리 4

                                                      차옥혜

줄기, 잎, 꽃, 연밥은
겨울을 건너지 못하지만
나는 순조롭게 건너 해마다
새 줄기, 잎, 꽃, 연밥을 낳아
봄, 여름,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습니다
감옥인 줄 안 진흙구덩이와 연못이
오히려 나를 지키고 보호하는
나를 먹이고 기르며 살리는
신의 품입니다
눈이 내리고 연못이 꽁꽁 얼어도
나는 멀쩡하게 편히 누워
새 봄을 준비합니다
투박하고 못 생긴 나를
언제나 꼭 껴안아주는
진구렁은
아무리 가물어도
나를 목마르지 않게
흠뻑 적셔주는
연못은
사랑이고 축복입니다

은혜의 순환 없이
어찌 세상이고 생명이겠습니까
어느 날 사람의 몸을 지날 때
연꽃등을 켜 어둠을 거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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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뿌리 3

시 -5 2025. 3. 7. 14:24

연뿌리 3

                                                 차옥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진흙밭 감옥 탈출하여
못을 헤치고
미지의 세계로 날아오르고 싶어
혼신의 힘으로 몸부림쳐
내 몸에 순을 내고 키워
물 위로 솟아
넓은 잎에
개구리 잠자리 물방개 쉬게 하고
꽃을 피웠습니다
연밥을 만들었습니다
하늘을 보았습니다
잎과 꽃과 가지가
물결에 바람에 흔들리면
내가 단단히 잡아줍니다
나는 물속 바닥 진흙 속에 있지만
가지, 잎, 꽃, 연밥과 함께 숨 쉬고
같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합니다
함께 슬퍼하고 같이 기뻐합니다
나는 뿌리지만
동시에 줄기이며 잎이고
꽃이며 열매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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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뿌리 2

시 -5 2025. 2. 21. 16:33

연뿌리 2

                                                  차옥혜

꽉 조이는 진흙 감옥에서 태어나
일생 연못을 받치고 살아
힘들고 힘겨워서
몸속에
구멍이 숭숭 났을까

아니면
사방 길이 막혀
눈 뜨고도 눈멀어
제 몸에라도 더듬더듬
길을 낸 것일까

아니면
답답하고 막막함 견디려고
제 몸을 뚫어
꽃무늬를 놓았을까

생이여
생의 무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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