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 김수영

타인의 시 2009. 7. 1. 11:35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룰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묵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감상】 풀의 본능! 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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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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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계 장터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빛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풀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 하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감상】 신경림 선생님의 시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시다. 정착을 꿈꾸면서도 떠돌며 살 수 밖에 없는 민초들의 애환과 삶이 환하고 애달프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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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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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시의 시집

                                                        기형도

 

   1

우리는 너무 어렸다. 그는 그해 가을 우리 마을에 잠시 머물다 떠난 떠돌이 사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른들도 그를 그냥 일꾼이라 불렀다.

   2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손을 가리켜 神의 공장이라고 말했다.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굶주림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무엇엔가 굶주려 있었다. 그는 무엇이든지 만들었다. 그는 마법사였다. 어떤 아이는 실제로 그가 토마토를 가지고 둥근 금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가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어른들도 몰랐다. 우리는 그가 트럭의 고장 고등어의 고장 아니, 포도의 고장에서 왔을 거라고 서로 심하게 다툰 적도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저녁때마다 그는 농장의 검은 목책에 기대앉아 이상한 노래들을 불렀다.

모든 풍요의 아버지인 구름

모든 질서의 아버지인 햇빛

숲에서 날 찾으려거든 장화를 벗어주어요

나는 나무들의 家臣, 짐승들의 다정한 맏형

그의 말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는 우리의 튼튼한 발을 칭찬했다. 어른들은 참된 즐거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란다. 그들은 세상을 자물통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세상은 신기한 폭탄, 꿈꾸는 部族에겐 발견의 도화선. 우리는 그를 믿었다. 어느 날은 비에 젖은 빵, 어떤 날은 작은 홍당무를 먹으며 그는 부드럽게 노래불렀다. 우리는 그때마다 놀라움에 떨며 그를 읽었다.

나는 즐거운 노동자, 항상 조용히 취해 있네

술집에서 나를 만나려거든 신성한 저녁에 오게

가장 더러운 옷을 입은 사내를 찾아주오

사냥해온 별

모든 사물들의 圖章

모든 정신들의 장식

랄라라, 기쁨들이여!

過誤들이여! 겸손한 친화력이여!

추수가 끝나고 여름 옷차림 그대로 그는 읍내 쪽으로 흘러갔다. 어른들은 안심했다. 그러나 우리는 벌써 병정놀이들에 흥미를 잃고 있었다. 코밑에 수염이 돋기 시작한 아이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한동안 그 사내에 대해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오랜 뒤에 누군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우리는 이미 그의 얼굴조차 기억하기 힘들었다. 상급반에 진학하면서 우리는 혈통과 교육에 대해 배웠다. 오래지 않아

   3

우리는 완전히 그를 잊었다. 그는 그해 가을 우리 마을에 잠시 머물다 떠난 떠돌이 사내였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꾸며낸 이야기였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저녁마다 연필을 깎다가 잠드는 버릇을 지금까지 버리지 못했다.

 

  【감상】 '그 사나이'는 기형도 시인 자신이 아니었을까. 삶의 진실을 알고 있던 사나이! 삶의 진실한 모습을 시로 읊던 아름다운 시인! 기형도 시인이 떠난 늦가을 길목을 한없이 바라보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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