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담바라 시인

               - 김규화 선생님께 -

 

  선생님! 그 많은 문우들 가운데 제게 편지를 주시다니요! 선생님의 편지는 제게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식물들의 어머니 시인’이라고 호명하시고, 제가 그렇게 시를 쓰기도 했지만, 오히려 나무와 풀이 저를 키우고 이 세상 진실을 보여주며 시를 쓰게 한 어머니고 스승이 아니었나 하는 마음이 들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의 해바라기인 것은, 선생님의 끝 모를 순수함, 세계에 대한 예리한 통찰의 힘, 철학적인 시의 향기, 남을 배려하는 따뜻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어느 문학 세미나 저녁 식사 후 산자락 산책 도중 달맞이꽃을 보시고는, 선생님께서 젊은 날 어느 산사 숲길에서 한밤중 달맞이꽃이 펑펑 터지는 것을 보셨다는 말씀에 연유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 저는 우담바라가 떠올랐습니다. 불가에서 천년에 한 번 핀다는 상상의 꽃 말입니다. 얼마나 긴 밤을 지새며 달맞이꽃 무리를 바라보셨기에, 사바세계의 번뇌에 남몰래 흘린 눈물이 많았기에, 달맞이꽃들이 무더기로 꽃문을 여는 것을 보셨겠습니까? 저는 틈만 나면 식물들과 오랫동안 몸 부비며 살았어도 아직 꽃 한 송이도 막 첫눈 뜨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 달맞이꽃 무리의 꽃빛을 타고 무의식 상태에서 이르렀을지도 모를, 불교의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쓴 선생님의 시 「지나가기」 전문을 봅니다. 


왔다가 가는 데는 걸림이 없기 / 그림자 가리다가 / 가는 것같이 / 미풍이 살랑이다 그친 것같이 / 기대란 철없다, 열정은 쉽게 탄다 / 시냇물이 냇가의 포플러나무 / 내려보는 것에 흐르듯 / 그렇게 보고 지나가기 / 참으로, 약속은 않는 준비를 하자 / 동구 밖 나무가 마을 바라보듯이 / 나뭇가지 새로 바람 지나가듯이 / 물이 되어 물과 섞어지게 하고 / 영원 속의 영원이 되어 / 참으로, 약속은 않는 준비를 하자 / 해를 가리고 지나는 구름같이 / 모양이 없는 몸속의 마음같이 / 그냥 내쉬는 숨같이 / 왔다가 가는 데는 걸림이 없기

 
  선생님은 나무, 냇물, 바람, 구름처럼 그냥 무심히 이 세상을 지나서 영원 속의 영원이 되고 싶어 하십니다. 선생님 빛의 근원을 봅니다.

  제 황토밭에 오신 많은 분은 저보고 당장 그만두라고 사람이 두 번 사는 것도 아닌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제 밭 푸른 잎들의 파도를 지나 건너편 산자락 은초록 빛으로 반짝이는 미루나무를 한참 바라보시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이대로 살아요.” 말씀하시며 제 작고 거칠며 주름진 미운 손을 들여다보며 쓰다듬어주셨습니다. 그 후로 저를 만나면 아무 말씀 안하시고 제 손을 들여다보십니다. 그 때마다 저는 선생님의 소리 없는 말씀을 듣습니다.

  선생님은 불편하고 고생스러워도 견디시며 갈 길은 가시는 분입니다. 선생님은 1978년 이래 지금까지 『시문학』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발간해 오셨습니다. 이 나라 시밭을 갈아 시꽃을 피우고 계십니다. 많은 문예지가 계간, 반 년간, 연간으로 돌아섰는데 「시문학」이 여전히 월간인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지요. 선생님은 『시문학』을 지키는 일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심정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청렴하게 잡지를 운영하십니다. 문예지들이 구독신청을 강요하고 후원금을 종용하는 일이 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말씀은 하실 줄 모릅니다. 현대시인협회 사화집을 출판하고 시인들이 하는 일에 이익을 낼 수 없다고 원가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돌려주셨다는 회계보고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문예지가 문인들에겐 하나의 정부이기도 한데 전혀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문인들에게 고스란히 나누어주십니다. 제가 세 번이나 『시문학』에서 시집을 내면서 이 세상에 계산할 줄 모르는 분이 산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시문학』 운영경비를 선생님의 봉사와 헌신으로 절약하고 감내하십니다. 어느 겨울 제가 시집 초교를 들고 시문학사에 들르니 난방이 안 되는 사무실에서 선생님은 팔목이 부러져 깁스를 한 아픈 손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인쇄소도 일일이 직접 다니십니다. 선생님은 맡은 일에 책임감이 강하시고 최선을 다하십니다. 보통 다른 출판사에선 제가 편집한대로 시집을 내는데 선생님은 시집 표제를 제가 ‘꽃보다 눈부신 사람’으로 한 것을 ‘허공에서 싹트다’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시 몇 편 순서를 바꾸는 것과 시집 표지 디자인에 대해서도 의논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신선하고 탁월한 예술적 안목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으신 것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은 매달 『시문학』을 발간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끊임없이 시를 발표하셨지요. 그런데 최근 기존의 시와 전혀 다른 하이퍼시를 쓰시면서 이렇게 설명하셨지요.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시를 탐구하고 싶었다. 늘 쓰는 시의 주체를 ‘나’에게서 객체인 ‘사물’로, 주체의 감정 혹은 정서보다는 사물의 본질 (과학적 입장이 아님)을 규명하는 쪽으로, 변화 많고 다양한 구성 쪽으로. 또한, 현실생활의 절반을 차지하는 컴퓨터 화면의 세계(하이퍼 〈저너머〉의 세계)로 나의 시선을 돌려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가상세계를 만들며 일상에서 쓰는 언어의 의미를 가급적 배제했다. 의미를 털어버리려니 자연히 음성 언어 쪽으로 치우쳤다.”

  선생님의 소리 이미지에 중점을 둔 하이퍼시 「매미소리」를 읽어봅니다.

역사박물관에서 <미륵> 강의를 듣고 나오는데 / 마당가 미루나무숲의 매미들이 한꺼번에 / 미륵 미륵 미륵, 미르 미르 미르 르르르 / 소리를 흘린다 // 염소에게서 배웠나, 매해해 얌얌 염소 / 입을 뾰죽이 내밀어 / 매매매 하는 그그그 미 / 매 하는 미, 매미이이이를 // 플랫폼에 혼자 두고 기차가 / 소리 한 번 매앵! 지르고 바퀴를 자글자글 굴리며 떠난다 // (생략)  

  이 시를 어느 시인은 하이퍼시의 전형이라 말하며 “탈관념의 사물과 상상 이미지의 두 단위의 초월 관계를 연결하여 완성된 시”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시의 달인이십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바라보는 것처럼 선생님의 하이퍼시는 독자에게 예술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사고의 폭을 넓혀주며 호기심과 재미를 줍니다.

  이제 선생님의 시는 세계로 날아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3년 전엔 미국에서 영역시집이 출간되었고 작년 말엔 프랑스에서 불역시집이 출간되어 현지인들에게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 평론가 마리안느 B가 선생님 시집에 대한 평론에서 “이 시집을 통해 나는 행복을 만난 것 같다. 시작품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의미를 발견하고 공감하였으며, 재능 넘치고 명망 높은 여 시인 뒤에 숨은 영혼이 나를 한층 더 감동으로 몰아갔다.”는 구절을 읽고 참 기뻤습니다.

  우담바라 김규화 선생님! 이 나라와 세계 문학에서 만년 그대로 아름다우소서.

  저는 선생님의 편지에 힘입어 성장하는 시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차옥혜 올림

 <『문학의집ㆍ서울』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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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글자로 부르는 노래

                                                            차옥혜

 

 

황토밭 원고지에 식물글자로

사랑과 생명과 평화를 노래한다

 

그립고 그리운 님 어긋나고 못 만나 죽어도

해마다 다시 살아 님을 꿈꾸는

상사화 글자로

발암물질을 억제하고 피를 맑게 하는

취나물 글자로

두뇌를 활성화 시켜 생명을 진화시키는

호두나무 글자로

못 생겼어도 향기로 영양으로 목숨을 반짝이게 하는

모과 글자로

사랑을 노래한다

 

콩잎 사이 수줍고 작은 보랏빛 얼굴로

벌과 나비를 불러 알찬 콩깍지 주렁주렁 배는

서리태 글자로

피톤치드 내뿜어 숨 쉬는 것들을 아름답게 하는

소나무와 잣나무 글자로

공기청소부 은행나무 글자로

생명을 노래한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오색 꽃 피고 또 피는

세계 평등주의자 백일홍 글자로

붉은 꽃잎 흩뿌리고 흩뿌리며

세상의 테러를 잠재울 것은

오직 사랑밖에 없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봉숭아 글자로

평화를 노래한다

 

번개치고 천둥 울고 장대비 쏟아지고 홍수 나도

폭풍 불고 눈보라치고 폭설 쌓이고 가물어도

견디며 죽으며 다시 살아 거듭 거듭 세상을 가꾸는

산수유, 할미꽃, 목련, 두릅, 도라지, 설토화, 좀작살나무

더덕, 주목, 사철 산당화, 박태기, 금송, 철쭉, 만수국

해바라기, 접시꽃, 붓꽃, 작약, 호박, 배추, 무, 매실

노루오줌, 둥굴레, 구릿대, 날개하늘나리, 범부채

………

식물 글자들로 황토밭 원고지를 가득 메워

랑과 생명과 평화를 합창한다

 

<시집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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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되어 풀잎이 되어 세상의 길을 찾다

                                                                                         차옥혜 

     

  20여년 전 서울 도심 아파트촌 콘크리트 벽 속에 살던 나는 문득 간절하게 고향이 그리워졌다. 그 고향은, 내가 태어난 전주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씽씽한 흙과 풀과 나무와 냇물이 있는 곳, 흙을 사랑하고 흙에 목숨을 대고 사는 흙사람들이 사는 곳, 자연이 인간에 종속되지 않고 인간과 대등한 관계로 대접받으며 공존하는 모든 곳이다.

  이때의 심정을 나는 다섯 번째 시집 『흙바람 속으로』 서문에 “인간의 원초적 자아이고, 참사람의 초상이며, 삶의 모태인 흙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곳에 나를 세우고 세계로 향한 문을 다시 열고 싶”고 “모든 목숨이 제 빛을 발하며 서로에게 등불이 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싱싱하고 활력이 넘치는 세상”을 보고 싶고 꿈꾸고 싶다고 쓴 바 있다.

  자연에 바람이 난 나는 마침내 개발이 잘 되지 않아 오래 자연을 간직할 것 같은 한 농촌 마을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유기농법과 자연농법으로 나무와 화초와 야채와 곡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한창 교육중인 아이들이 있는 가족을 도시에 남겨둔 나는, 도시와 시골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하면서, 일 더미에 빠져 쉴 새 없이 분주했다.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은 한 발짝 물러서서 감상만 하던 때와는 다르게 많은 양의 힘든 작업을 필요로 했다. 끊임없이 돌보고 가꾸지 않으면 자연의 아름다움은 이내 사라지고 생명은 시들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 할 때엔 서툰 탓인지 불과 몇 시간의 작업에도 손가락 관절이 부어 손이 쥐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외과 병원에 가서 뜨거운 촛물에 손가락을 담그는 물리치료를 받기도 했다. 평생 엄청나게 힘든 일을 끊임없이 하고 사는 농민들이, 흙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그들의 노고 덕분에 도시 사람들의 먹거리가 공급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묘목을 심어 가꾸면서 세상의 노동과 조금이나마 함께 하고 있다는 연대감 같은 것이, 어떤 긍지와 자부심 같은 것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삽자루와 호미를 던져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런 갈등 속에서도 내가 뿌리고 심은 식물들에서 푸릇푸릇 새싹이 솟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을 보면 기쁨이 절로 솟고 그 순간의 감격과 환희가 나를 단단히 자연에 동여맸다.

  식물은 흙범벅이 된 내게,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떨기도 하고, 때로는 어머니처럼 나를 껴안고 내 등을 다독여주기도 하는가 하면, 연인처럼 내 영혼을 어루만져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시가 되어 오기도 했다.

  한여름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밭에서 일을 하다가 문득 불덩이가 된 얼굴을 들어 벌판을 바라보면 넘실대는 초록빛 풀잎 사이로 진정한 세상으로 가는 길이 보이는 듯 했다.

  식물을 기르니 온갖 새들과 곤충들과 몇몇 짐승들(다람쥐, 들고양이, 두더지, 고라니, 족제비 청설모)이 저절로 내게 가까이 왔다.

  이렇게 황토밭에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식물의 주인 행세를 하던 나는 어느덧 식물들의 어머니나 언니나 동생이나 자식이 되었다.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나는 식물의 마음을 지니게 되었고 식물과 하나가 되었다. 내가 식물이 되어버렸다.   식물은 순하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 태어난 자리에서 평생을 움직이지 않고 가뭄과 폭우와 눈보라를 견디면서 맑은 공기를 생산하고 인간의 밥이 되어주고 집이나 가구가 되어주고 사람에게 안식과 평화를 준다. 삶의 토대가 되어주고 세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한다. 식물은 동물과 세상의 생명이다.

   어느 날 나는 문득 산과 들에 저절로 자라는 저들 식물은 신이 인간에게 읽히고 싶어 흙에 식물글자로 수시로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밭과 정원은 내가 식물글자로 세상을 향해 생명과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시를 쓴 황토밭 원고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은 신의 완전한 창조를 모방한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렇다. 나는 식물글자로 황토밭 원고지에 시를 쓰면서 세계와 인류가 생명과 평화와 자유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다. 보여주는 것이다. 노래하는 것이다.

   이제 세계와 인류는 자연과 하나 되는 녹색 생활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오랜 세월 과다 생산을 위한 개발과 성장과 발전은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를 가져왔고 그로 인한 기후 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고 한다. 사막이 늘어나고 벌써 어느 나라는 극심한 가뭄과 고온 현상으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녹기 시작해 남태평양의 어느 섬은 물에 잠길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미국 모하비 사막에 있는 그랜드캐년에서, 나는 땅의 틈이 광활하고 깊게 갈라져 환히 들여다보이는 지구의 나이테를 보며 감탄하다가, 그 깊은 계곡에 있는 인디언의 마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문명과 숲도 없어 현대인이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거칠고 고립무원한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일까? 아메리카의 원주민이었던 그들은 밀리고 밀려 이제 더 이상 달리 살아갈 곳이 없어서일까? 어차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니 미국 정부는 그곳을 인디언 구역으로 지정해주고 그곳 인디언들에게 국민의 권리만 있고 의무는  지우지 않아 세금도 받지 않는 것일까?

  아니, 그랜드캐년에서 사는 인디언들은, 어쩌면 척박한 자연과도 인내하며 동화되어 자연으로 사는 것만이 지구를 해치지 않고 지구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고,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고 삶으로 온몸으로 세계를 향해 웅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들은 깊은 골짜기에서 인류를 향해 자연의 소중함과 건강한 지구의 미래와 건강한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시를 몸과 삶으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세계인들이 문명과 문화를 포기하고 모두 원시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과학과 문명의 발전이 뒷받침한 쾌적하고 편리한 생활양식이 몰고 온 환경과 자연에 미치는 폐해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끝없이 생산과 소비를 촉진하는 사회구조에 휘말려 있는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생활이 좀 초라하고 더디고 불편하고 힘들어도 삶의 토대인 자연과 환경이 훼손되지 않는,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는, 진정한 생명과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생활방식을 모색하고 대안을 찾아보고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환경을 위하여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자신과 후손들을 위하여 죽어가는 지구를 살려야 할 책임이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으로 인간이 모든 생물들에게 해온 이기적인 폭력과 착취를 이제는 자제해야 한다. 인류가 오랫동안 인권과 민주주의를 가꾸고 수호해 왔듯이 모든 생명과 식물에 대한 권리와 가치도 인정하고 배려하고 지켜주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문명과 과학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어 문명과 자연을 번갈아 오가며 끝없이 갈등하고 반성하고 고민하며 산다.

  이제 나는 늙고 몸이 많이 쇠약해져 언제까지 자연의 한 자락을 지키고 가꾸면서 황토밭에 식물글자로 시를 더 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남을 해치지 않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식물(일부 자기 방어로 독성을 가진 식물도 있지만)에게서 인간의 미래로 가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평화와 자유와 생명과 사랑을 온몸으로 노래하고 사는 식물에게서, 종을 달리하는 동물에게 순한 눈빛과 포근한 가슴으로 기쁨과 위로와 안식과 밥을 주는 식물에게서, 인간을 위하여 살신성인해온 식물에게서 인류와 지구의 희망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첨단 과학과 경제논리에 밀려나고 푸대접 받았던 녹색이, 임업이, 친환경 농업이 결국 위기에 처할 인간의 미래를 구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늦봄에 서리태를 심었다. 작년에 추수를 하고 크고 흠 없고 윤기가 나는 잘 생긴 씨앗을 골라놓았지만 3년마다 종자를 바꿔주는 것이 좋다는 말에 종묘상에서 새 씨앗을 사다가 심었다. 그런데 보통 2주면 새싹이 나는데 3주가 되어서야 겨우 발아한데다가 예년과 달리 연약한 새싹이 면도날로 벤 듯이 잘려 있어 새싹의 생존율은 20%에 불과했다. 새로 구입한 종자 콩이 묵은 불량품인데다가 자연농법으로 경작하다 몇 년 만에 모처럼 뿌린 퇴비에 딸려온 듯한 거세미가 새싹을 잘라먹었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농부는 밭을 갈아엎고 다시 심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벌써 잡초는 무성하게 자라 새싹을 덮어버렸다. 고민했지만 이미 조금이나마 난 새싹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자꾸 땅을 갈아엎으면 땅 속의 미생물이 죽게 되어 그만큼 지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년퇴직을 한 남편과 함께 잡초를 뽑아주고 사이사이 빈자리에 새 씨앗을 다시 심기로 했다. 땅을 갈아엎고 줄을 띄워 기계로 콩을 심으면 반나절이면 충분할 일이었다. 그러나 새싹보다 훨씬 웃자란 무성한 잡초를 뽑고 수없이 일어났다 섰다를 반복하며 일일이 간격을 맞추어 빈자리에 호미로 콩을 심는 작업은 둘이서 하루 11시간씩 3일 동안 하고서야 겨우 끝났다. 하지를 앞둔 초여름 긴긴 날 뜨거운 햇볕 아래서 땀을 줄줄 흘리며 우리는 딱정벌레처럼 황토밭에 붙어 있어야 했다. 거세미 피해를 미리 알지 못한 우리는 이 작업을 한 달 넘게 두 차례나 반복해야 했다. 콩을 새로 다 심고 나니 온몸의 살이 아프고 뼈가 텅텅 울려 걷기가 힘들었다. 극심한 근육통과 뼈의 통증은 일주일이 지나서 겨우 풀렸다. 이웃은 바보짓을 하고 있다고 한심한 듯 우리를 바라보았지만 그래도 나는 먼저 난 새싹을 살리고 흙을 지켰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뿌듯했다.

  이렇게 농사는 고달프다. 게다가 퇴비와 종자를 구입한 비용, 동네 아주머니에게 김매는데 지불한 인건비 등만 따져도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 비싸고 비경제적이다. 그러나 고생한 만큼 땅을 오염시키지 않고 맑고 건강한 생명의 열매를 얻게 된다. 이것은 나에겐 세상의 가치나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하고 귀한 일이다.

  가을이 되니 연약하던 콩싹들은 내 허리까지 훌쩍 자랐고 콩밭은 푸른 콩잎으로 가득 넘쳐 땅이 보이지 않는다. 콩 줄기엔 알밴 콩깍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콩밭은 바람에 쏴쏴 소리를 내며 파도친다.

  늦가을부터는 벌레에게 살을 나누어주어 모양은 볼품없이 찌그러지기도 한 콩들과 나는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다. 콩은 내 몸으로 들어와 나와 한 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명의 빛을 뿜어내며 반짝일 것이다. 만약 농약을 많이 먹고 자란 콩이라면, 깨끗하고 보기는 좋지만 나와는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내 몸 속에서 불협화음을 일으켜 나를 천천히 병들게 할 것이다.

  그런데 좋은 이상과 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마을의 농부 한 분은 농사는 짓는 날부터 손해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 집 앞 3천 평 땅을 놀리고 조경회사의 인부로 일한 지 15년이 넘었다. 농사를 지으면 농사에 매여 일자리도 수입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농사짓는 것보다 품팔이가 수익이 좋아 5년 전에는 6명이 탈 수 있는 조그만 트럭도 사고 작업반장이 되어 인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조경 작업을 한다. 이제 그는 기술자 대우를 받는다. 그는 내가 추수해서 말리고 있는 들깨를 보며
  “한 말에 3만원 밖에 안 되는데 품삯이 나오나요?”라고 나에게 물으면서 옛날엔 농지를 놀리면 천벌을 받는 줄 알았지만 농사는 바보짓이라고 단언한다.
  내가 그의 말대로 세상 화폐로 따져 손해를 보는 식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남편의 연금에 기대어 생계가 보장되기 때문일까? 나도 오로지 땅에 기대어 살아야만 한다면 진정으로 여유로운 마음으로 황토밭에 식물글자로 시를 쓸 수 있으며 녹색의 길만이 미래의 대안이라고 큰소리로 여전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머뭇거리며 그래도 세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땅을 정갈하게 지키고 친환경적으로 식물을 보호하고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며
  “친환경적인 농산물들이, 나무들이, 화초들이, 제 값을 받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세워야 돼. 농민들이, 흙사람들이 땅을 버리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배려하고 대접하고 지원해야 돼. 그래야 모두가 사는 생명의 길에 이를 수 있으니까.” 라고 중얼거린다.
 황토밭에서 20년 넘게 식물 글자로 시를 써온 일은 고달프기도 하지만 내 삶에 참으로 유익하고 소중하고 귀한 체험이고 보람이다. 나는 나무와 풀잎이 되어 사람과 식물과 동물과 자연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세상을 더 환하게 볼 수 있었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고 세상이, 세계가, 지구가,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찾고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했고 지금 행복하다.
 


                                    2009년 가을               
                                                       식물 글자로 시를 쓴 황토밭 원고지에서         

 <시집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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