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지붕

                                 김명인

 

집 짓던 인부들 집은 안 짓고

콘크리트 다져 넣은 슬래부 구조물 안에 틀어박혀

노래로 지붕을 얹고 있다 비닐로 덮어씌운

기둥 안쪽으로는 비 들이치지 않는지

쓰고도 남는 목청들 빗소리에 섞고 있다

낡은 가사로 골조를 세우면 얼기설기 줄거리는

일생을 꾸리고도 남는데

두껍고 두꺼운 오늘의 구름장은 언제 치우나

벽돌도 안 쌓고 인부들

대낮부터 빗속에서 지붕만 얹고 있다

얽어도 얽어도 씻겨 내리는 노래의 지붕!

폐인트 통 두드리는 엇박자 빗소리가

후렴에도 걸쳤다가 맨홀 틈새로 스며든다

 

  【감상】 비가 와서 잠시 쉬며 노래로 지붕을 얹고 있는 집 짓던 인부들! 시의 프리즘을 통하면 고단한 삶도 이렇게 아름답고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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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정공장*에서

                                                                김경훈

 

- 주정공장에서 군인들은 임신부였던 어머니를 눕혀 놓고 배 위에 나무 널판을 깔아 널뛰기를 했다

 

아부 그라이브나 죽음의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조차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기술이다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알았더라면 쌍수 들고 환영했을 기상천외한 수법이다

고문은 그들에게 있어 기술이고 또한 유희였지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고문을 당하는 자나 고문을 자행하는 자나 더더욱 그것을 교사한 자들은

 

-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아들은 50여 년 후 주정공장 진혼제의사회를 맡았다

 

* 주정공장은 제주시 산지부두에 있었던 건물로 송승문씨의 부모 등 4.3 당시 많은 수의 제주도민들이 여기에 수용되어 고초를 겪었다.

 

  【감상】 제주도 김경훈 시인은 제주 4.3의 이야기를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시집 "눈물 밥 한숨 잉걸"에 사실대로 기록했다. 시인과 시집에 고개 숙인다. 역사는 기억을 통해서 발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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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란 강

                                           공광규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 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감상】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강인가! 이 강을 죽이다니! 강을 지켜야 한다.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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