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을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감상】 담쟁이 도종환 선생님은 참 교육을 위한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 되셨을 때 "힘겹던 해직의 나날 담쟁이처럼 살기로 했습니다"고 했다. "벽을 벽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포기하지 안으면서,  오래 걸릴 거라고 행각하면서,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여, 마침내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당쟁이처럼 벽을 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고 했다. 세상의 수 많은 벽들을 기어오르는 담쟁이 들의 순결한 초록빛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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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의 철학

                               이경희 

 

어둠이 있어

반짝이는

너의 존재 

 

허면

반짝임은

어둠을 품고

있음일세 그려.

 

  감상별이 빛인 줄만 알았지 어둠을 품고 있다는 진실을 왜 몰랐을까? 어둠을 품고 있는 별!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던 별이 새삼 가깝게 느껴지고 피가 도는 느낌이다. 빛과 어둠을 함께 지닌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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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을 읽다

                                          김규화

 

이젤을 거꾸로

일요일의 한강이 그림을 그린다

우우우 몰려와 늘어선 물가의 아파트군

단숨에 세우고

짐짓 흔들어본다

하늘을 제 가슴 깊숙이 클릭하고

그 위에 구름 몇 송이 흘리다가는

이내 지워버린다

아파트를 흑수정으로 꾸며놓고

욜랑욜랑 물살 속의

창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구부정한 어머니

뒤따르는 나를 덥석 안는다

돛단배 하나 지나가면서

한강이 우리를 지운다

피사로의  [수문]을 물새가 가로지른다

 

  【감상】 이 시는 <하이퍼시>의 전형이다. 시인은 컴퓨터, TV, 핸드폰 등의 IT기기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시대에 시의 변화를 추구하는 <하이퍼시> 운동을 하고 있다.
  위 시에 대한 시인 본인의 해설을 들어보자. "이 시는 사이버세계와 현실세계의 융합이라고 하겠다. 한강과 한강 가에 늘어선 고층아파트들의 현실과, 한강물 속에 비치는 아파트와 그 속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환상)을 병치시켜놓고 돛단배 하나가 지나가면서 현실과 환상 모두를 지워버리는 가상현실을 표현해 본 것이다."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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