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감상】 이렇게 아름다운 기도가 있을까? 하느님께서도 들으시며 큰 소리로 한참 웃으셨겠지만 눈엔 눈물이 일렁였을 것이다.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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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종종걸음     

                                                       고증식

 

진종일 치맛자락 날리는

그녀의 종종걸음을 보고 있노라면

집안 가득 반짝이는 햇살들이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푸른 몸 슬슬 물들기 시작하는

화단의 단풍나무 잎새 위로

이제 마흔 줄 그녀의

언뜻언뜻 흔들리며 가는 눈빛,

숭숭 뼛속을 훑고 가는 바람조차도

저 종종걸음에 나가떨어지는 걸 보면

방안 가득 들어선 푸른 하늘이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 발걸음이 햇살이고 하늘인 걸

종종거리는 그녀만 모르고 있다 

 

  【감상】 ‘단풍나무 잎새 위로 언뜻언뜻 흔들리는 가는 눈빛’도, ‘숭숭 뼛속을 훑고 가는 바람’도 이긴 아내의 종종걸음이 ‘집안 가득 반짝이는 햇살’이고 ‘방안 가득 들어선 푸른 하늘’인 것을 아는 남편이 얼마나 있을까!  아내의 수고에 감사하는 남편의 마음이 환하고 어여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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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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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괭이밥

                                    허형만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땅을 기어보았느냐

 

그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이 후미진 땅이 하늘이라면

한 목숨 바쳐 함께 길 수 있겠느냐

 

기다가 기다가

결국 온몸을 놓아버린 자리에서

키 작은 꽃 하나

등불처럼 매단다면 곧이듣겠느냐

 

 【감상】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기다가 기다가”도  “등불”같은 꽃을 매다는 삶!  삶에 이런 희망과 신비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루인들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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