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종종걸음     

                                                       고증식

 

진종일 치맛자락 날리는

그녀의 종종걸음을 보고 있노라면

집안 가득 반짝이는 햇살들이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푸른 몸 슬슬 물들기 시작하는

화단의 단풍나무 잎새 위로

이제 마흔 줄 그녀의

언뜻언뜻 흔들리며 가는 눈빛,

숭숭 뼛속을 훑고 가는 바람조차도

저 종종걸음에 나가떨어지는 걸 보면

방안 가득 들어선 푸른 하늘이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 발걸음이 햇살이고 하늘인 걸

종종거리는 그녀만 모르고 있다 

 

  【감상】 ‘단풍나무 잎새 위로 언뜻언뜻 흔들리는 가는 눈빛’도, ‘숭숭 뼛속을 훑고 가는 바람’도 이긴 아내의 종종걸음이 ‘집안 가득 반짝이는 햇살’이고 ‘방안 가득 들어선 푸른 하늘’인 것을 아는 남편이 얼마나 있을까!  아내의 수고에 감사하는 남편의 마음이 환하고 어여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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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괭이밥

                                    허형만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땅을 기어보았느냐

 

그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이 후미진 땅이 하늘이라면

한 목숨 바쳐 함께 길 수 있겠느냐

 

기다가 기다가

결국 온몸을 놓아버린 자리에서

키 작은 꽃 하나

등불처럼 매단다면 곧이듣겠느냐

 

 【감상】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기다가 기다가”도  “등불”같은 꽃을 매다는 삶!  삶에 이런 희망과 신비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루인들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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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의 지붕

                                 김명인

 

집 짓던 인부들 집은 안 짓고

콘크리트 다져 넣은 슬래부 구조물 안에 틀어박혀

노래로 지붕을 얹고 있다 비닐로 덮어씌운

기둥 안쪽으로는 비 들이치지 않는지

쓰고도 남는 목청들 빗소리에 섞고 있다

낡은 가사로 골조를 세우면 얼기설기 줄거리는

일생을 꾸리고도 남는데

두껍고 두꺼운 오늘의 구름장은 언제 치우나

벽돌도 안 쌓고 인부들

대낮부터 빗속에서 지붕만 얹고 있다

얽어도 얽어도 씻겨 내리는 노래의 지붕!

폐인트 통 두드리는 엇박자 빗소리가

후렴에도 걸쳤다가 맨홀 틈새로 스며든다

 

  【감상】 비가 와서 잠시 쉬며 노래로 지붕을 얹고 있는 집 짓던 인부들! 시의 프리즘을 통하면 고단한 삶도 이렇게 아름답고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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