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양정자

 

있는 듯 없는 듯 선연한 손이 있어

저리 어여삐 떠받치지 않는다면

모두 고와 보이는 저 사물들은

정말 고와 보이리까. 藥손이여

 

  【감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켜주고 키워주고 꿈을 주는 약손이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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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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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안도현

 

새해에는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소서.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난데없는 불행으로 마음 졸이지 않게 하시고, 가진 게 많아서 신나는 사람보다는 가진 것만큼으로도 충분히 신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가 되더라도  '대박'의 요행 따위 꿈꾸지 않게 해주소서. 내 와이셔츠를 적시게 될 땀방울만큼만 돈을 벌게 하시고, 나 자신을 위해 너무 많은 열정을 소비해온 지난날을 꾸짖어주소서. 부디 내가 나 아닌 이들의 배경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바라보던 이에게는 남의 자식의 구멍 난 양말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내 말을 늘어놓느라 남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하는 이에게는 파도 소리를 담는 소라의 귀를 주소서. 백지장처럼 맑고 높은 정신으로 이 풍진 세상을 견디게 하소서. 이땅의 젊은 아들딸들에게 역사는 멀찍이 서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프게 몸에 새기는 것임을 깨우쳐주시고, 늙고 병들고 나약한 이의 손등에 당신의 손을 얹어 이들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시간을 연장해주소서.당신의 힘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시고, 통하지 않는 것을 통하게 해주소서. 겨울 팽나무의 흔들리는  가지 끝과 땅속의 묵묵한 뿌리가 한 식구라는 걸 알게 하시고, 숲속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길과 사람 사는 마을의 골목길이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 당신이 괴롭지 않은 세상 일구게 하소서. 

 

  감상】 오늘은 2014년 1월 1일 새해 첫날이다. 안도현 시인의 아름다운 '기도'를 거듭 듣는다. 가슴이 촉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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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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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나희덕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감상】 시인은 해변에서 힌 거품을 내며 밀려오는 파도를 수만 말이 뛰어오는 모습으로 보고 있다.동시에 그 말들은 세계로부터 시인에게로 쏟아져오는 언어이기도 하다. 자신의 몸 속에서도 말 한 마리 튀어나와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말은 짐승 말이면서 동시에 시인의 가슴 속에 깃든 영혼의 부르짖음!  시인의 말인 것이다. 두 가지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시인의 내면과 풍경이 하나로 통합되어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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