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자궁이 지은 집 

                                                          차옥혜

 

어머니는 주춧돌 아버지는 대들보

형제들은 주춧돌과 대들보를 이어준

일곱 기둥

별, 구름, 비, 바람, 눈, 해 놀다가도

틈 하나 나지 않고 튼튼하던 집

내 눈이고 귀이고 입이고 가슴이던 집

언제부턴가 일곱 기둥 차례로

새가 되어 날아가 버려 무너진 집

풀꽃과 달빛에 기대어

천리 밖 자식들 발자국 소리에

귀를 모으고 마음 졸이던

주춧돌과 대들보마저 묻혀버려

70년 만에 사라져버린 집

날마다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내 피와 살과 뼈인 집

내 길이고 등대인 집

날이 갈수록 더욱 환하고 아리는

가도 가도 닿지 않는 눈물 집

 

엄마아! 아빠아! 언니이! 오빠아! 동생들아!

숨바꼭질 그만하자  어서 나와

 

          <사철푸른어머니의 텃밭(한국시인협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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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따구리가 날아왔다

                                                   차옥혜

 

 

딱따구리가 날아와

딱딱딱 나를 쪼며 노래할 때

아프기도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내 이파리들 기뻐 우우 노래로 화답했네

 

딱딱딱 딱따구리가

내 마음에 둥지를 틀 때

부드럽고 따뜻하여

내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노래로 흔들렸네

 

딱따구리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세계가 실려 오고

나도 딱딱딱 세계를 쪼아 집을 짓는

딱따구리가 되었네

 

딱딱딱 딱따구리는 나

딱딱딱 나는 딱따구리

우주는 나

나는 우주

 

 <(한국현대문학관)  200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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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은 사랑이고 어머니다

                                                                            차옥혜

 

  김지하 시인은 “밥은 하늘입니다”라고 시를 썼다. 나는 거기에 “밥은 사랑이고 어머니다”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88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는 평생 따뜻한 밥상을 만들어 자식들을 먹이고 이웃과 나누어 먹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사셨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대보름날 어머니 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큰 찜통에 오곡밥을 짓고 계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퇴행성관절염이 심하여 잘 서지도 못하시는 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너희들을 위해서 만드는 오곡밥일지도 모르겠구나. 형제들 에게 나눠줘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우리 어머니께서 자식들을 위하여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지으신 사랑의 밥이다.

  어머니는 일곱 자식을 낳아 기르셨다. 중고등학교 사회과목 교사였고 좋은 세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였고 사회운동가였던 가난한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오랫동안 밥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어떻게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먹일 수 있을까가 긴 세월 어머니를 옥죄는 당면과제였다. 어머니는 어려움 속에서도 끼니때 찾아온 손님들과 밥을 얻으러 온 거지에게도 정성을 다하여 밥을 나누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남몰래 자주 굶으셔야 했고 영양실조로 자리에 눕는 일도 생겼다. 내 어린 시절엔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가 많았는데, 어느 날엔 어머니의 밥상을 대접받았던 한 거지가 갈치를 한 마리 들고 찾아와, 그 때 어머니가 밥을 주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거지로 떠돌면서 그렇게 따뜻한 밥상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고 말하며, 감사하는 일도 있었다.

  밥과 싸움이 가장 치열한 때는 6.25동란으로 시작된 1950년대였다. 그 무렵 우리의 인사는 “안녕하십니까?”가 아니고 “진지 드셨습니까?”였다. 밥 한 그릇을 물과 김치를 넣고 끓여 아홉 식구가 나누어 먹기도 했다. 보릿가루 묽은 죽, 무채를 잔뜩 썰어 넣은 무밥, 쌀이 거의 보이지 않던 우거지 밥, 보리개떡, 콩나물 죽, 아욱죽, 수제비, 고구마 밥…… 모두 배고픈 어린 나에겐 꿀맛 밥이었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났지만, 궁핍한 그 시절 어머니께서 온갖 지혜를 다 짜내어 눈물과 사랑으로 어렵게 차려 나와 내 형제들과 이웃을 지킨 어머니의 밥상은, 내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사무치는 따뜻한 밥상이며 동시에 어머니다.

 

 <좋은생각 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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