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유리창

시 -2 2007. 6. 4. 09:44

 

   새와 유리창

                                                     차옥혜

 

 

새 한 마리 빠르게 날아와

거실 큰 유리창에 부딪쳐

순간 땅에 떨어져 죽었다

 

오라, 오라! 손짓한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풀과 꽃을 향해

기쁨으로 전 속력을 다해 질주했는데

느닷없이 앞을 가로막고 선

보이지 않는 유리창

유리창에 반사 된 허상의 유혹에

목숨을 잃어버린 새

 

죽은 새 위로

유리창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날아가는

또 한 마리의 새

저 새가 날아가는 곳은 어디일까?

 

달리던 환한 길 앞에서

갑자기 나는 더듬대고 머뭇거린다 

 

 

<정신과표현  2006년 1112월호>

<좋은 시 2007(삶과꿈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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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마법

시 -2 2007. 6. 2. 15:05

  

말의 마법

                                                                      차옥혜

 

 

달구지풀, 작두콩, 병풍나물, 삿갓나물

요강나물, 족두리풀, 비녀골풀, 투구꽃, 갈퀴나물

 

이런 이름들 가만히 불러보면

 

가난해도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시골 할머니네 마을 사람들이 보이네

 

갯패랭이꽃, 구름패랭이꽃, 난장이패랭이꽃

섬패랭이꽃, 각시패랭이꽃, 술패랭이꽃, 수염패랭이꽃

 

패랭이꽃들 이름을 불러보면

 

장대비 쏟아져, 폭풍 휘몰아쳐, 천둥 번개 쳐, 폭설 내려

삼천리 방방곡곡 억울하게 죽은 목숨들 떠오르네

 

쑥, 씀바귀, 냉이, 달래, 두릅, 원추리 불러보면

 

몸에 생기가 돌고

산수유, 매화, 개나리, 목련, 진달래 불러보면

겨울 창도 환하고 따뜻해지네

 

어쩌다 묵은 책갈피 속에서 떨어진

첫 사랑 편지를 읽으면

아득한 옛날이 지금인 듯 늙은 가슴도 설레고

돋보기안경 낀 얼굴도 화끈거리며 웃음꽃 피네

 

<문학과 창작  200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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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에 내리는 눈

시 -2 2007. 6. 1. 17:56

 

삼월에 내리는 눈

                                                       차옥혜

 

어디만큼 가다 되돌아왔니?

 

따뜻한 겨울에 쫓겨 간 너를 찾아 헤매다

매화 피고 산당화, 산수유 꽃망울 맺히고

초록물 오른 황매화 가지 바람그네 타는

봄길 어귀에서

뜻밖에 못 잊어 돌아온 너를 만났다

내 영혼은 네 입술에, 뺨에, 온몸에 입 맞추며

너를 얼싸안고 천지사방 휘돌며 춤을 춘다

 

네 눈망울은 왜 그다지도

맑으면서 서글프냐

네 춤은 왜 그다지도

설레면서 아프냐

 

순간일지라도 세상과 나를

꽃 꽃 꽃 눈꽃으로 피워놓는

곧 또 다시 떠나고 말

내 사랑아

 

<시문학  200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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