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소리가 투명하다

                                                        차옥혜

 

긴 여름 왁자지껄하던 아우성이

가을에는 한 소리 한 소리 투명하게 드러난다.

까르륵 웃는 저 소리

가만히 들여다보니 상처가 났고

훌쩍이는 저 소리

찬찬히 바라보니 희망이 솜털처럼 묻어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행복이 어디 있으랴.

잎 진 나뭇가지에 붉게 타는 저 감

푸른 하늘과 사랑을 나누며 자지러지지만

가을이 가기 전 사라지거나

겨울이 오기 전 까치의 가슴을 지나

우주로 돌아갈 것을.

낙엽 이슬에 젖은 소리도

싸움터 울부짖는 소리도

통통 햇빛을 뿜어내는 소리도

시궁창에 빠진 소리도

가을은 맑고 푸르게 껴안아줘

겨울을 넘어 봄날이면

어김없이 들녘 가득 다시 꽃으로 피어나

세상은 또다시 떠들썩하리니.

아픈 소리조차 노래가 되는 가을밤엔

살아있는 목숨들이 귀뚜라미가 된다.

 

<동국시집 252006년>

 

'시 -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공에서 싹 트다  (0) 2008.04.01
소금구이 새우  (0) 2008.01.25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1) 2007.07.02
새와 유리창  (1) 2007.06.04
말의 마법  (0) 2007.06.02
Posted by 차옥혜
,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차옥혜

 

 

황토밭 원고지에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온 몸으로 껴안고 사랑하며

땀 흘려야 쓸 수 있지만

쓰고 난 후에도 보살피지 않으면

제 멋대로거나 사라지지만

날마다 새로운 파노라마 초록시이다.

언제나 설레고 아름답고 편안한

숨 쉬는 생명시이다.

옷은 황토물과 풀물로 얼룩지고

호미 들고 동동거려 팔다리가 쑤셔

볼품없이 늙고 여위어도

식물 글자로 시를 쓰는 것이 즐겁다.

 

어느 날 들판이 문득 나를 불러

땅에 식물 글자로 시를 쓴 지 어언 20년

출판할 수 없는 시집 한 권

지금 내 몸과 영혼의 집이 어여쁘다

 

 <문학의집서울  2007년 6월호>

 

'시 -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금구이 새우  (0) 2008.01.25
가을엔 소리가 투명하다  (1) 2007.09.11
새와 유리창  (1) 2007.06.04
말의 마법  (0) 2007.06.02
삼월에 내리는 눈  (0) 2007.06.01
Posted by 차옥혜
,

새와 유리창

시 -2 2007. 6. 4. 09:44

 

   새와 유리창

                                                     차옥혜

 

 

새 한 마리 빠르게 날아와

거실 큰 유리창에 부딪쳐

순간 땅에 떨어져 죽었다

 

오라, 오라! 손짓한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풀과 꽃을 향해

기쁨으로 전 속력을 다해 질주했는데

느닷없이 앞을 가로막고 선

보이지 않는 유리창

유리창에 반사 된 허상의 유혹에

목숨을 잃어버린 새

 

죽은 새 위로

유리창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날아가는

또 한 마리의 새

저 새가 날아가는 곳은 어디일까?

 

달리던 환한 길 앞에서

갑자기 나는 더듬대고 머뭇거린다 

 

 

<정신과표현  2006년 1112월호>

<좋은 시 2007(삶과꿈재수록>

 

'시 -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엔 소리가 투명하다  (1) 2007.09.11
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  (1) 2007.07.02
말의 마법  (0) 2007.06.02
삼월에 내리는 눈  (0) 2007.06.01
낯선 방과 나그네  (0) 2007.03.23
Posted by 차옥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