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게

시 -2 2006. 12. 4. 12:17

 

사막에게

                                                차옥혜

 

 

미안하다

너의 슬픔을 외로움을 두려움을

너의 고통을 절망을 공포를

비 오고 냇물 흐르고

풀잎 돋고 꽃이 피는 땅에서 산

나는 몰랐다

 

얼마나 고달프냐 아프냐 무서우냐

용서해다오

 

내 눈물로 너를 적셔주마

 

노래도 분노도 놓아버린 너

믿음 그리움 꿈이라는 말 잃어버린 너

사랑과 평화와 희망이라는 말

속삭일 때까지

너를 안아 주마

 

미안하다

 

<해외문학  10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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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2

시 -2 2006. 12. 2. 12:29

 

산다는 것은 2

                                                      차옥혜

 

 

불끈 치솟아 하늘을 뚫은 저 산도

깊은 동굴을 품고 있다

 

울지 말자

가슴 안에

빽빽한 돌고드름과 돌순을

한여름에도 가득한 냉기를

끝없이 솟아 흐르는 물과 거울 같은 물웅덩이를

괴로워 말자

몸 안에

소리치면 달려와 뺨을 치는 메아리들을

낮에 거꾸로 매달려 잠자다가도

밤이면 우주 끝까지 날아다니며 아우성치는

눈먼 박쥐 떼들을

 

산다는 것은

제 안에

동굴 나날이 길어져 아파도

껴안고 쓰다듬으며

제 밖에

조팝나무 가시나무 칡 인동

노루귀 씀바귀 솜다리 질경이

산돼지 다람쥐 여우 늑대

여치 소쩍새 땅강아지 부엉이

미워도 고와도 찾아온 생명이면 무엇이든

품어 기르는

산이 되는 것

 

<시집 『허공에서 싹 트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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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마구간에 가지 않았다

 

                                                                차옥혜

 

 

인간을 사랑하여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신 하느님

싸구려 여인숙에도 들지 못하고

지하철 입구나 바람 막을 벽이 있는 길거리엔

노숙자들이 이미 다 자리잡고 있어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마을엔 누울 자리가 없어

말이 내어준 말의 반쪽 방

마구간에 몸을 내려놓으신 하느님 아기예수를 보러

나는 마구간에 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흰 눈이 소록소록 꽃잎처럼 날리는

높은 첨탑에 십자가 환한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교회로

크리스마스트리 멋진 최신식 집과 아파트로

최고급 병원 산부인과 특등실로

말끔히 목욕하고 새 이불에 싸여

영양 좋고 향기로운 어머니의 젖을 배불리 먹고

꽃처럼 잠든 아기예수를 보러

나는 갔다.

 

동방박사들처럼

별을 따라 나귀 등에 예물을 싣고

험한 들과 위험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지 않고

오색으로 반짝이는 불빛 따라 빈손으로

자동차를 타고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세상 사람들의 축하와 경배를 받고 있는

행복한 아기예수를 보러

나는 갔다.

 

폭설에 세찬 바람까지 불어

위태롭게 삐걱대는 축사 지붕 밑

목욕도 못하여 양수 뒤집어쓴 채

낡고 때 절은 어머니의 윗저고리에 덮여

쫓기고 지치고 남루하고 깡말라 비실대는 어머니 품에서

나오지 않는 젖을 빨다 울어대는

아기예수를 보러

나는 마구간에 가지 않았다.

 

<기독교문학 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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