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방과 나그네

시 -2 2007. 3. 23. 22:55

 

낯선 방과 나그네

                                                    차옥혜

 

낯선 마을 낯선 거리를 떠돌다

해가 지고 밤이 늦어

하룻 밤 묵어 갈 낯선 방에

나그네는 생애를 내려놓네

그러나 낯선 방이 자꾸만 나그네를 밀어내

피곤한 몸 밤새도록 뒤척이며 잠 못 이루다가

풀어놓은 짐을 또 다시 싸는 아침

이제야 낯선 방이 나그네를 받아들이는가

낯선 방이 슬며시 나그네 바지자락을 잡아당기네

그래도 떠나야 하는 나그네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하룻 밤 낯선 방을 둘러보며

안녕

젖은 목소리로 말하네

 

<붉은 실개천(기픈시문학회 8)  2006>

                                         <한겨레신문  2007.2.26.자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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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운다

시 -1 2006. 12. 5. 01:39

 

매미가 운다

                                                        차옥혜

 

우렁우렁 산을 무너뜨리고 있는

굴삭기와 싸우며

매미가 운다

 

매미는 울어

곤두박질치는 나무에게

겁에 질린 풀잎에게

무너지는 흙더미에게

다가간다 함께 한다

 

매미는 울어

굴삭기에 맞서

굴삭기 소리에 떠서

굴삭기 소리를 치받는다

 

매미가 운다

뙤약볕을 흔들며

굴삭기 소리를 깨뜨리며

굴삭기 소리에 혼절한 새들을 깨우며

매미가 운다

 

우는 매미여 시인이여

 

<문학과창작  199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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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게

시 -2 2006. 12. 4. 12:17

 

사막에게

                                                차옥혜

 

 

미안하다

너의 슬픔을 외로움을 두려움을

너의 고통을 절망을 공포를

비 오고 냇물 흐르고

풀잎 돋고 꽃이 피는 땅에서 산

나는 몰랐다

 

얼마나 고달프냐 아프냐 무서우냐

용서해다오

 

내 눈물로 너를 적셔주마

 

노래도 분노도 놓아버린 너

믿음 그리움 꿈이라는 말 잃어버린 너

사랑과 평화와 희망이라는 말

속삭일 때까지

너를 안아 주마

 

미안하다

 

<해외문학  10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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