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하늘과 나

시 -2 2006. 11. 1. 23:58


    

바다와 하늘과 나

                                                     차옥혜

 

바다와 하늘이 소리 없이

몸을 섞는 것을 본다.

아니 푸르른 바다와 하늘은 이미 하나다.

바다와 하늘의 가운데서

바다와 하늘을 보고 있는 나는 무엇일까?

바다와 하늘의 심장일까? 콩팥일까? 혀일까?

내면에 감추어둔 손일까?

아니면 캥거루처럼 그들의 품에 품고 있는

자라지 않는 새끼거나

평생 지켜주어야 할 모자라는 자식일까?

나는 바다와 하늘을 끊임없이 바라보다가

바다와 하늘의 영혼의 소리를 담아내는 일

그것이 내 일이므로

나는 바다와 하늘의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나는 처음부터 바다고 하늘이었으리라.

바다와 하늘이 내 몸에서 움직인다.

바다와 하늘과 내가 순환한다.

오래 전부터 바다와 하늘과 나는

하나였다.

 

<동국시집 2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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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정원사

시 -2 2006. 11. 1. 23:32

 

슬픈 정원사

                                                                                              차옥혜

 

    해가 벌써 돌아와서 나팔꽃 분꽃 채송화 원추리 능소화 해바라기 봉숭아 금송 꽃향나무 은행나무 주목 감나무……들과 장난치고 있다 정원사는, 잠꾸러기 꽃과 나무를 깨우러 다니다, 태어날 때부터 시들거리며 밤새도록 앓다가 이제 겨우 잠든 난쟁이 백일홍 곁을 지나며 행여 옷깃이 스칠까 봐 이슬 젖은 바지자락을 살짝 들어올린다 몇 발짝 지나가다 다시 돌아와 조심스럽게 호미로 백일홍에 주변의 흙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준다

    정원사의 아내는 시방 집에서 척추장애로 누워 지내며 천식까지 앓고 있는 아들의 대소변을 요 위에서 받아내고 얼굴과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양치질을 시킨 뒤 이 쪽 저쪽으로 아들의 몸을 젖혀가며 운동을 시킨 후 아침밥을 떠먹이고 있을 것이다

    웃자란 나뭇가지는 팍팍 쳐내고 시들거리는 풀꽃은 쑥쑥 잡아 뽑아버려야 싱싱한 아름다운 정원이 된다고 주인은 잔소리를 해대지만, 정원사는 멋대로 자란 나뭇가지들을 자연스럽다고 쳐내지 못하고, 사람이나 다람쥐나 두더지나 멧돼지에 짓밟혀 허리 부러진 풀꽃들이나 벌레 먹어 구멍이 난 풀잎들을 어쩌지 못하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예쁜 모습이 될 것이라고 농약 뿌리지 않아도 자생력을 키워주면 더 좋은 꽃과 열매를 맺을 거라고 말한다 정원사는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하면서도 더 열심히 병들고 상처 나고 시들거리는 나무들을 보살피며 울컥울컥 치솟는 슬픔을 꾹꾹 누른다

 

<정신과표현, 2006.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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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

시 -2 2006. 11. 1. 23:26

 

오죽

                                                     차옥혜

 

 

검은 몸뚱이에 솟은 초록 잎새!

사막을 건너면서도

목숨의 빛을 발하는

깡마른 아프리카 여인의 슬픈 몸!

 

새벽 4시 전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고 남편 일을 돕고

6km를 걸어 물을 길어오고

거의 혼자서 농사를 지며

여섯 명의 자식들을 키우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해도 가난해서

다섯 살도 안 된 자식

병원 못 가 죽어 가슴에 묻고

두 명의 자식만 학교에 보낸 여자

 

남편이 죽었다고 친척들에게 소를 빼앗기고

남편 소유의 땅에서 농사지을 권리도 빼앗긴

남편 때문에 걸린 에이즈가 유일한 유산인

검은 대륙의 딸

 

아프리카 여인의 아린 눈동자!

 

<시집 식물글자로 시를 쓴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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