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마구간에 가지 않았다

 

                                                                차옥혜

 

 

인간을 사랑하여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신 하느님

싸구려 여인숙에도 들지 못하고

지하철 입구나 바람 막을 벽이 있는 길거리엔

노숙자들이 이미 다 자리잡고 있어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마을엔 누울 자리가 없어

말이 내어준 말의 반쪽 방

마구간에 몸을 내려놓으신 하느님 아기예수를 보러

나는 마구간에 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흰 눈이 소록소록 꽃잎처럼 날리는

높은 첨탑에 십자가 환한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교회로

크리스마스트리 멋진 최신식 집과 아파트로

최고급 병원 산부인과 특등실로

말끔히 목욕하고 새 이불에 싸여

영양 좋고 향기로운 어머니의 젖을 배불리 먹고

꽃처럼 잠든 아기예수를 보러

나는 갔다.

 

동방박사들처럼

별을 따라 나귀 등에 예물을 싣고

험한 들과 위험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지 않고

오색으로 반짝이는 불빛 따라 빈손으로

자동차를 타고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세상 사람들의 축하와 경배를 받고 있는

행복한 아기예수를 보러

나는 갔다.

 

폭설에 세찬 바람까지 불어

위태롭게 삐걱대는 축사 지붕 밑

목욕도 못하여 양수 뒤집어쓴 채

낡고 때 절은 어머니의 윗저고리에 덮여

쫓기고 지치고 남루하고 깡말라 비실대는 어머니 품에서

나오지 않는 젖을 빨다 울어대는

아기예수를 보러

나는 마구간에 가지 않았다.

 

<기독교문학 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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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 껍질들의 합창

                                                       차옥혜

 

 

가을걷이 끝난 들녘에 서면

마른 껍질들의 합창 소리 들린다.

 

누렇게 마른

콩대, 깻대, 도라지 꽃대, 더덕 줄기, 토란대

호박 줄기, 고춧대, 참취, 벌개미취, 해바라기, 볏짚

새 생명을 낳은 산모들이

영원으로 대지로 우주로 귀향하며

기쁨에 넘쳐 부르는 노래 노래

마음과 영혼으로 듣는

소리 없는 합창

 

한여름 힘겨운 임신과

몸서리치는 산고는 옛 이야기

가벼워진 몸으로 당당한 승리자의 눈빛으로

영생과 안식의 집으로 돌아가는

세상과 세상을 이어준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들의 소리 없는 노래

 

가을 벌판에 서면

마른 껍질들의 합창 소리 듣는다.

 

<문예비젼  2010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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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하늘과 나

시 -2 2006. 11. 1. 23:58


    

바다와 하늘과 나

                                                     차옥혜

 

바다와 하늘이 소리 없이

몸을 섞는 것을 본다.

아니 푸르른 바다와 하늘은 이미 하나다.

바다와 하늘의 가운데서

바다와 하늘을 보고 있는 나는 무엇일까?

바다와 하늘의 심장일까? 콩팥일까? 혀일까?

내면에 감추어둔 손일까?

아니면 캥거루처럼 그들의 품에 품고 있는

자라지 않는 새끼거나

평생 지켜주어야 할 모자라는 자식일까?

나는 바다와 하늘을 끊임없이 바라보다가

바다와 하늘의 영혼의 소리를 담아내는 일

그것이 내 일이므로

나는 바다와 하늘의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나는 처음부터 바다고 하늘이었으리라.

바다와 하늘이 내 몸에서 움직인다.

바다와 하늘과 내가 순환한다.

오래 전부터 바다와 하늘과 나는

하나였다.

 

<동국시집 2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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