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시인

                                                      차옥혜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가 시인인 것을 알았네.

문자로 남긴 시는 한 줄도 없지만

벌판에 산에 강에 바다에

길에 집에 마을에 도시에

내 마음 멎는 곳마다

어머니가 몸으로 쓴 시 박혀있네.

나만 볼 수 있는 시

내가 번역해야만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의 시를 읽네.

 

향기롭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시

눈물 나고 가슴 아픈 어머니의 시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어머니의 시

읽어도 읽어도 더 읽고 싶은 시

읽다 보면 가슴에 고이는 사랑

읽다 보면 눈에 맺히는 눈물

읽다 보면 온 몸에 퍼지는 평화

 

나는 글씨로 시를 쓰느라

사랑을 잃고 삶을 허물었는데

어머니는 몸으로 시를 쓰며

사랑을 이루고 삶을 세우셨네.

 

시인인 나를 부끄럽게 하는 어머니의 시

내 생애 가장 감동스런 어머니의 시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어머니의 시

천지 사방에 박혀 있는 어머니의 시

 

우리 어머니는

세상에 몸으로 시를 쓴 시인이네

 

<시문학  200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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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죄인

시 -2 2006. 5. 23. 09:16

 

슬픈 죄인

                                                            차옥혜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잠자다가 거울을 보다가

어머니 잘 못했습니다

아픈 가슴으로 말하네.

 

꽃을 보다가 새소리를 듣다가

빨래를 개다가 별을 보다가

어머니 미안해요

시린 뼈로 말하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환한 어머니

어머니 용서해주세요

젖은 넋으로 사무친 그리움으로 말하네.

 

어머니를 쓸쓸하게 외롭게 한

내 죄가 얼마나 큰가를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았네.

 

어머니는 이럴 나를 미리 아시고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 것이니

내가 떠나도 마음 상하지 마라

너 같은 딸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

고맙다.

말씀하시며 죽음 이후에도

불효한 나를 껴안고 힘주려하셨네.

그래서 나는 더욱 슬픈 죄인이네.

 

<문학과창작  200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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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시 -1 2006. 5. 20. 13:33

 

 

달맞이꽃

                                                  차옥혜

 

 

어둠이 깊어서야 너는 꽃이 되었구나

 

캄캄하기 전에는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으랴

바벨탑들이 무너지고

빛나던 것들이 암 덩이를 드러낸다

믿었던 오아시스는 신기루고

사랑은 소금기둥이 되었다

 

절망이 아픔이 슬픔이 익어 핀

꽃이여

질펀한 어둠을

네 빛으로 다 태울 수 있겠느냐

네 가슴으로 다 녹일 수 있겠느냐

캄캄한 세상을 밤새도록 울고 나면

새벽을 물고 오는 파랑새를 보랴

대낮은 꿈처럼 왔다 가고 또 다시

고통스러워도 눈에 불을 켜고

세상의 창자가 다 드러난 밤을 지키려느냐

 

어둠이 깊어서야 너는 꽃이 되었구나

 

<강남문학  6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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