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죄인

시 -2 2006. 5. 23. 09:16

 

슬픈 죄인

                                                            차옥혜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잠자다가 거울을 보다가

어머니 잘 못했습니다

아픈 가슴으로 말하네.

 

꽃을 보다가 새소리를 듣다가

빨래를 개다가 별을 보다가

어머니 미안해요

시린 뼈로 말하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환한 어머니

어머니 용서해주세요

젖은 넋으로 사무친 그리움으로 말하네.

 

어머니를 쓸쓸하게 외롭게 한

내 죄가 얼마나 큰가를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았네.

 

어머니는 이럴 나를 미리 아시고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 것이니

내가 떠나도 마음 상하지 마라

너 같은 딸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

고맙다.

말씀하시며 죽음 이후에도

불효한 나를 껴안고 힘주려하셨네.

그래서 나는 더욱 슬픈 죄인이네.

 

<문학과창작  2006년 봄호>

 

'시 -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마존이 나를 낚다  (1) 2006.05.26
우리 어머니는 시인  (1) 2006.05.23
등대지기  (1) 2006.05.17
가을 바람  (0) 2006.05.16
존재는 슬프다  (0) 2006.05.05
Posted by 차옥혜
,

달맞이꽃

시 -1 2006. 5. 20. 13:33

 

 

달맞이꽃

                                                  차옥혜

 

 

어둠이 깊어서야 너는 꽃이 되었구나

 

캄캄하기 전에는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으랴

바벨탑들이 무너지고

빛나던 것들이 암 덩이를 드러낸다

믿었던 오아시스는 신기루고

사랑은 소금기둥이 되었다

 

절망이 아픔이 슬픔이 익어 핀

꽃이여

질펀한 어둠을

네 빛으로 다 태울 수 있겠느냐

네 가슴으로 다 녹일 수 있겠느냐

캄캄한 세상을 밤새도록 울고 나면

새벽을 물고 오는 파랑새를 보랴

대낮은 꿈처럼 왔다 가고 또 다시

고통스러워도 눈에 불을 켜고

세상의 창자가 다 드러난 밤을 지키려느냐

 

어둠이 깊어서야 너는 꽃이 되었구나

 

<강남문학  6호  2000>

 

 

 

'시 -1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시 -개구리  (2) 2006.06.29
에디아카란에게로 가는 길  (0) 2006.06.20
낙엽  (1) 2006.05.19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2) 2006.05.19
나뭇잎  (0) 2006.05.05
Posted by 차옥혜
,

낙엽

시 -1 2006. 5. 19. 23:15

  

낙엽

                                             차옥혜

 

괜찮아 겁내지마

당당해

자유는 언제나 쓸쓸하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야

가슴이 열려

하늘이 꽉 들어차는구나

흙에 뒹굴면 서야

눈이 뜨이는구나

 

<서울문학  2 1999>

 

 

'시 -1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디아카란에게로 가는 길  (0) 2006.06.20
달맞이꽃  (0) 2006.05.20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2) 2006.05.19
나뭇잎  (0) 2006.05.05
기도 2  (0) 2006.05.05
Posted by 차옥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