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6 

            -말씀과 야채 전

 

                                                                     차옥혜

 

 

아버지는

전쟁이 난 이듬해 굶고 있는 어린 자식들을 끌고

언덕으로 숲으로 다니며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옛날 성현들은 배고픔을 잘 참고 견디며

열심히 마음을 닦아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어떤 장사는 며칠을 굶고도

정신력으로 마을에 든 도둑 떼를 물리쳤다고

말씀을 영혼의 밥을 열심히 퍼주셨다.

얼마를 헤매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어디서 밀가루를 구해 와

화덕에 가마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야채 전을 부치고 계셨다.

 

나를 기른

아버지의 말씀과 어머니의 야채 전

그 갈등으로 숨차던

여섯 살배기 내 그 긴 긴 하루

 

<밥이 있는 수채화(기픈시문학회 3)  2001>

<경향신문  2008.5.19.자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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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시 -1 2006. 5. 5. 16:14

  

 나뭇잎

                                                    차옥혜

 

 

어제는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

서쪽으로 나부끼고

오늘은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동쪽으로 나부꼈다.

 

이제는 나도 몰래

삼베옷 갈아입히고

저승 갈 시간이라고

나뭇가지에서 떨쳐 버리니

가시철망에 찔리고

아스팔트에 구르다

구둣발에 채이며

골목을 돌고 돌아

시궁창에 떨어졌다.

 

저승엔 바람 없겠지

내 뜻대로 나부끼리라.

 

<바람은 늘 떠나고 있다(은금나라)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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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2

시 -1 2006. 5. 5. 16:14

  

 기도 2

                                          차옥혜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

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가진 것만 아니라

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

승리만 아니라

패배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 아니라

아픔도 감사하겠습니다.

불붙고 맞아서 제 구실 하는

대장간 쇠붙이를 저는 압니다.

 

<사랑하는하나님께(타임기획),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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