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4  

            -내 서른세 살 어머니

 

                                                                       차옥혜

 

 

육이오 전쟁이 난 1950년 여름

내 서른세 살 어여쁜 어머니는

전국 기독청년회 전북지부를 창설하고

안재홍 선생이 이끌던 신생회 전북지회 회장을 하며

민족의 평화통일과 자주통일정부를 세우려 힘을 합치던

5.10 총선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사람들이 표로는 당선되고 낙선했다고 수군대던

서른세살 남편을 감옥에 뺏기고

어린 자식들 넷 시골 친척집에 각각 나누어 맡기고

두 살 난 아기 등에 업고

임신한 몸으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팔

빨래비누 머리에 이고

논둑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지만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 야단맞고 발 동동거리며

싸리대문 앞에서 울고 있는 다섯 살배기 내가 가엾어

여치와 메뚜기가 발등을 간질이는지도 모르고

뜸북뜸북 뜸부기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아니면 어머니 눈에

붉은 맨드라미 가득 피여 쓰라렸을 것이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내 아름다운 서른세 살 어머니가

내 마음 논둑을 아프게 걸어가고 있다.

 

<문예운동  200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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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6 

            -말씀과 야채 전

 

                                                                     차옥혜

 

 

아버지는

전쟁이 난 이듬해 굶고 있는 어린 자식들을 끌고

언덕으로 숲으로 다니며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옛날 성현들은 배고픔을 잘 참고 견디며

열심히 마음을 닦아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어떤 장사는 며칠을 굶고도

정신력으로 마을에 든 도둑 떼를 물리쳤다고

말씀을 영혼의 밥을 열심히 퍼주셨다.

얼마를 헤매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어디서 밀가루를 구해 와

화덕에 가마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야채 전을 부치고 계셨다.

 

나를 기른

아버지의 말씀과 어머니의 야채 전

그 갈등으로 숨차던

여섯 살배기 내 그 긴 긴 하루

 

<밥이 있는 수채화(기픈시문학회 3)  2001>

<경향신문  2008.5.19.자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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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시 -1 2006. 5. 5. 16:14

  

 나뭇잎

                                                    차옥혜

 

 

어제는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

서쪽으로 나부끼고

오늘은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동쪽으로 나부꼈다.

 

이제는 나도 몰래

삼베옷 갈아입히고

저승 갈 시간이라고

나뭇가지에서 떨쳐 버리니

가시철망에 찔리고

아스팔트에 구르다

구둣발에 채이며

골목을 돌고 돌아

시궁창에 떨어졌다.

 

저승엔 바람 없겠지

내 뜻대로 나부끼리라.

 

<바람은 늘 떠나고 있다(은금나라)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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