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시 -1 2006. 5. 5. 16:13

 

  매미

                                                 차옥혜

 

가을이 되고서야 하늘을 본다

날마다 팔 다리에서 온몸으로

마비증세가 퍼져간다.

아무리 노래를 해도 울림이 없다.

여름날 몸을 떨던 나뭇잎이

어디론가 사라져간다.

어찌하여 들풀들은 무릎 끓기 시작할까

왜 나무는 끝내 입을 다물고 있을까

여름내 노래 불러준 모든 것이

왜 나를 거부하고 있을까

이 삭막한 대지를 적시는 비는 무엇인가

이제야 끝없는 물음에

하늘만 자꾸 넓어져 간다.

 

<시집 『깊고 먼 그 이름』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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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 김 씨

시 -1 2006. 5. 5. 16:11

  

 광부 김 씨

                                                                    차옥혜

 

    독일 루르지방 탄광촌 한국인 광부 김씨는 아침에 햄과 버터와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자가용을 타고 숲길을 지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막장에 들어간다.

    오후 다섯 시면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부인과 함께 아름다운 숲길을 산책하거나 수퍼마킷에서 물건을 사고 백화점에서 상품을 구경한다.

    저녁엔 감자와 카베츠 소세지를 먹으며 음악을 듣는다.

    휴일엔 알프스나 북해로 여행을 간다.

    그러나 간혹 한국인 광부들과 모여 한국 식품가게에서 사온 된장 고추장 김치 오징어 쥐포 라면을 먹으며 일주일 늦게 배달된 한국 신문을 읽고 고향소식에 열을 올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주먹을 불끈 쥐고 탁자를 친다.

    맥주병을 다 비우고 나서는 주눅이 들어 큰 소리 한 번 못 질러 보고 산 고향의 벌거벗은 산이 자기를 부른다고 운다.

 

<시집 『깊고 먼 그 이름』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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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1

시 -1 2006. 5. 5. 16:10

  

 새 1

                                                               차옥혜

 

당신의 얼굴을 본 일은 없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알 껍질을 깨고

어서 하늘을 날으라는

당신의 소리 없는 말씀을

나는 들을 수 있습니다.

거기 지구 밖

나를 품어 굴리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미명의 수렁밭을 빠져나와

알 껍질을 깨고

하늘을 날겠습니다.

 

<시집 『깊고 먼 그 이름』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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