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버리랴

시 -2 2006. 5. 5. 16:24

  

마음을 버리랴

                                                       차옥혜

 

너를 보니

기쁘다 즐겁다

다시 너를 보니

아프다 슬프다

눈을 감았다 다시 너를 보니

너는 환하다 빛이다

자고 나서 다시 너를 보니

너는 없다 어둠이다

귀를 기울이니

너는

침묵이다

번개소리다

속삭임이다

 

눈을 버리랴 귀를 버리랴

아니 마음을 버리랴

 

너는 너인데

내 마음 따라

너는

바위이다가 풀잎이다가

도깨비이다가 사람이다가

꽃이다가 짐승이다가

별이다가 허공이다가

 

마음에 재를 뿌려라

눈뜨고 눈먼

귀 열고 귀 먹은

가엾은 사람아

 

<강남문학 7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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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4  

            -내 서른세 살 어머니

 

                                                                       차옥혜

 

 

육이오 전쟁이 난 1950년 여름

내 서른세 살 어여쁜 어머니는

전국 기독청년회 전북지부를 창설하고

안재홍 선생이 이끌던 신생회 전북지회 회장을 하며

민족의 평화통일과 자주통일정부를 세우려 힘을 합치던

5.10 총선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사람들이 표로는 당선되고 낙선했다고 수군대던

서른세살 남편을 감옥에 뺏기고

어린 자식들 넷 시골 친척집에 각각 나누어 맡기고

두 살 난 아기 등에 업고

임신한 몸으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팔

빨래비누 머리에 이고

논둑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지만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 야단맞고 발 동동거리며

싸리대문 앞에서 울고 있는 다섯 살배기 내가 가엾어

여치와 메뚜기가 발등을 간질이는지도 모르고

뜸북뜸북 뜸부기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아니면 어머니 눈에

붉은 맨드라미 가득 피여 쓰라렸을 것이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내 아름다운 서른세 살 어머니가

내 마음 논둑을 아프게 걸어가고 있다.

 

<문예운동  200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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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6 

            -말씀과 야채 전

 

                                                                     차옥혜

 

 

아버지는

전쟁이 난 이듬해 굶고 있는 어린 자식들을 끌고

언덕으로 숲으로 다니며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옛날 성현들은 배고픔을 잘 참고 견디며

열심히 마음을 닦아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어떤 장사는 며칠을 굶고도

정신력으로 마을에 든 도둑 떼를 물리쳤다고

말씀을 영혼의 밥을 열심히 퍼주셨다.

얼마를 헤매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어디서 밀가루를 구해 와

화덕에 가마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야채 전을 부치고 계셨다.

 

나를 기른

아버지의 말씀과 어머니의 야채 전

그 갈등으로 숨차던

여섯 살배기 내 그 긴 긴 하루

 

<밥이 있는 수채화(기픈시문학회 3)  2001>

<경향신문  2008.5.19.자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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