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힘으로 빛나는 자작나무

                                                            차옥혜

 

 

러시아 상트 페테스부르그 옛 성에서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레닌이, 혁명군들이

머물다 갔을지도 모르는

눈부신 자작나무를 만났다.

몇 백 살일까. 몇 천 살일까.

두 아름드리 몸통과 쭉쭉 뻗은 하얀 가지들이

빛을 뿜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이 세상 삶들이

상처의 힘 없이도 빛날 수 있을까.

상처의 힘 없이도 목숨을 지킬 수 있을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 상처는 언제쯤

아물어 빛을 발할까.

 

자작나무를 껴안자

자작나무가 내 몸으로 들어왔다.

슬픔으로 꽉 닫혔던 내 마음의 창들이 열리고

내 마음의 자작나무가 세계를 향해

새를 날렸다.

 

<시와시학  200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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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손

시 -2 2006. 5. 5. 16:27

 

죄인의 손

                                                           차옥혜

 

 

가야해 가야해

네 아버지 묻힌 고향으로 가야해

어머니는 말씀하시지만

안돼요 못 가요

더 강하게

꽉 잡아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쓸쓸한 손을 알면서도

가셨다 싫으면 언제고 다시 오세요

말하며 늙은 어머니의 이사 짐을 싼다

어머니가 바라는 것은

나의 손길 나의 눈길이라는 것 알면서도

남쪽은 따뜻하고 공기가 좋아서 건강에 좋을 거예요

말하며 떨리는 손으로 울컥거리는 가슴으로

늙은 어머니의 이사 짐을 싼다

늙은 어머니 홀로 고향에 가시면

동백꽃이 되거나 소쩍새가 될 것 알면서도

늙은 어머니의 이사 짐을 싼다

 

달빛이 수갑 채우는

죄인의 손

 

<시문학  200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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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뭍으로 가고 싶다

                                                            차옥혜

 

섬은 야윈다

제 살점을 떼어 파도를 풀며

제 뼈를 떼어 갈매기를 날리며

섬은 한사코 뭍으로 가고 싶다.

 

흑산도 그 할아버지는

아들 다섯 모두 뭍으로 보냈다.

물고기 잡고 미역 따고 김 말려

섬에서 번 돈

늙은 마누라와 쓸 생활비만 남기고

모두 뭍으로 보낸다.

 

섬은

실은 뭍도 수 만 섬들이 모여

어깨 부딪치며 악다구니하는 곳인 것 알면서도

모든 존재는 종내는 빈배로 떠돌다

섬이 되는 것 알면서도

뭍으로 가

어깨 한 번 부딪쳐보고 싶은 거다.

말 한 번 건네 보고 싶은 거다.

천년 외톨이로 쓸쓸한 섬은

만년 벙어리로 서러운 섬은

 

<문예운동  200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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